정유년, 신앙 안에서 본 닭의 의미
“예수님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배신했던 순간 들려온 닭 울음소리에 눈물 흘린 베드로 -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성당 종탑 닭.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새벽녘 새 날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는 예로부터 어두움과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좋은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마르 14,66-72)고 부인했던 장면 등을 통해 닭은 신앙인들에게 ‘깨달음’ ‘회개’의 의미를 던져준다. 정유년 새해를 맞으며 신앙 안에서 살펴본 닭의 의미들을 정리해 본다. 역사에 나타난 닭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서는 닭이 새벽을 알리는 존재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시경이 기원전 1000년에서 600년경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기원전 1000년대에 이미 중국에서는 닭이 사람들과 가까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닭은 인도,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서방에 전해진다. 이집트나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닭은 공작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새’로 불렸다. 처음에는 고기와 계란을 얻기 위한 가축이었다기보다, 투계를 걸고 점을 치거나 시간을 알기 위해 길러졌다. 새벽에 우는 습성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태양을 부르는 새로 알려져, 울음소리로 어둠을 쫓는 빛의 상징으로도 간주됐다. 그리스인들은 문자가 적힌 곡식알을 닭이 골라내게 하여 미래를 점쳤고, 로마인들은 전쟁을 하기 전 닭이 모이 먹는 방법으로 승전을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한시대부터 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훨씬 이전부터 닭을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닭이 상징적인 존재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의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 신화에서다. 알영, 김알지 같은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상서로운 조짐을 보여주는 새로 등장했고, 백제가 망할 때는 이를 미리 예시하기도 했다. 중국 지린성의 고구려 고분 무용총 천장에서 발견되는 닭의 모습이나 인도에서 고구려를 ‘계귀국’이라고 불렀다는 기록 등을 보면 고구려 풍속에서도 닭이 친근한 동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역사 안에서 닭 관련 기록은 문헌이나 문학작품 설화 민요 등에서 수없이 출현하지만, 대부분 그 관념들은 길(吉) 한 것으로 평가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닭이 유입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유배된 전후로 추측된다.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닭을 처음 접한 후 예루살렘에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닭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전파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지붕 닭.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희생 제물로 봉헌되기도 닭은 사람 대신 제물로 많이 바쳐졌다. 인도 동북부 카시족은 수탉을 제물로 봉헌했는데, 이는 수탉의 희생으로 사람들의 죄가 씻긴다는 의미였다. 유다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현재까지도 ‘카파롯’(Kapparot)이라는 의식을 통해 속죄일(Yom Kippur)에 앞서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거행된다. 이사야서, 시편, 욥기 등을 읽은 뒤 남성은 수탉을, 여성은 암탉을 머리 위로 들어 세 바퀴를 돌린 후 “이는 나를 맞바꿔 나를 대신해 죗값을 치른다. 이 닭이 죽는 대신 나는 평화롭게 장수하며 선한 삶을 살 것이다”라는 속죄 기도문을 외운다. 이 같은 유다인들의 속죄 예식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성전에서 대속죄일 예식을 행했던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서양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묘지에서는 종종 수탉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수탉이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은 죄인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베이트 지브린(Beit Jibrin)의 그리스도인 묘지, ‘수탉 묘지’에는 십자가와 함께 두 마리의 빨간 수탉상이 서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에서도 예수와 함께 있는 수탉 그림을 볼 수 있다. 새벽을 가장 먼저 알리는 동물 - 예루살렘 시온산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에 세워진 조각상.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가운데) 사도의 모습을 표현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예루살렘 시온산 남동쪽 언덕에 위치한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St.Peter in Galicantu)은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던 성경 속 장면을 토대로 지어졌다. 성당 지붕 종탑 꼭대기에는 그 의미를 상징하듯 닭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순간 닭이 우는 광경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닭의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닭은 신앙인들에게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에 깨달음을 주는 동물로 소개된다. 또 어두움과 악의 힘을 내쫓는 울음으로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신약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닭을 많이 길렀다. 사람들은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시간을 가늠했다. 신약성경에서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 등장한다. 로마인들은 오전 3시경을 ‘닭이 우는 때’(Gallicinium)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인들도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예를 들면 마르코 복음 13장 35절의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 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는 구절은 그런 배경을 엿보게 한다. 여기서 닭은 한편 세상 종말에 앞선 여러 환란, 또 그 뒤에 이어지는 ‘인자’의 재림과 연계돼 언급되기도 한다. “암탉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카 13,34) 구절에서도 닭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김명숙 박사(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병아리를 품는 암탉’을 얘기했다는 면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을 드러낸다”고 의미를 밝혔다. 루카 복음 11장 12절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는 구절은 달걀이 인간에게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됐음을 볼 때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새벽을 가장 먼저 알리는 동물’ 닭은 예로부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파수꾼으로 여겨졌다. 성당 종탑의 닭 모양 장식은 ‘베드로의 회개’를 상기시키는 것과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가장 먼저 닭이 우리에게 그 소식을 알려 줄 것이라는 희망도 담겨 있다. 풍향계를 함께 달아 바람의 방향도 미리 알아챌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고 이끄는 표시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교회들에서는 황금색 수탉의 풍향계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어두움의 힘을 무찌르고 죄를 용서하며 부활로 새로운 날을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뜻한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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