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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자르, 낯선 사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21 조회수5,282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자르, 낯선 사람


낙인찍혀 배척받은 이들… 경계 못 넘는 ‘이방인’

 

 

자르는 낯선 사람이다.

 

 

승인받지 못한 사람

 

자르는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방인’으로 옮긴다.(이사 1,7; 25,2 등)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 지면을 통해서 이방인을 의미하는 게르를 보았다.(17회) 자르는 게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말이다. 자르는 단지 비(非)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사람, 인정받지 못한 사람, 이웃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람, 그래서 더 서러운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모세의 율법에 ‘거룩한 기름’, 곧 성유(聖油)를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탈출 30,22-33) 깨끗하고 귀한 재료로 정성껏 만든 성유를(22-25절), 제단과 각종 기물에 부어 거룩하게 하고(26-30절)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도 부어 역시 거룩하게 한다.(31절) 그런데 이 거룩한 기름은 아무한테나 부어서는 안 된다. 만일 “자르(속인)에게 발라 주는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33절) 이처럼 자르는 공동체 내에서 아무런 자격도 없고,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금지된 자르

 

자르는 낯선 사람이요 금지된 사람이었다. 성경은 자르들, 곧 “낯선 이들”(예레 2,25)이나 “낯선 자들”(예레 3,13)과의 혼인이나 통교를 금지한다. 잠언에는 ‘자르 여성’(“낯선 여자”: 잠언 2,16; 5,3.20; 7,5)을 조심하라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 자르들과 통교하는 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일이다. 게다가 자르의 설움은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자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들은 ‘주님을 배신하여 낳은 자르 아들들(사생아들)”(호세 5,7)이다.

 

- 엘 자르. '낯선 신'이란 뜻이다. 모세와 예언자 등은 낯선 신에 마음을 뺏기지 말라고 거듭 역설했다.

 

 

자르가 가장 엄격히 사용된 표현을 꼽으라면 ‘낯선 신’을 의미하는 ‘엘 자르’일 것이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너는 엘 자르(낯선 신)를 경배해서는 아니 된다”(시편 81,10)고 강력히 권고하며,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하느님이시지 엘 자르(낯선 신)가 아니라고 역설한다.(이사 43,12) 모세는 엘 자르들(낯선 신들)을 경배하면 하느님을 질투하게 만들어(신명 32,16)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르는 경계

 

자르와 함께 알아두면 좋을 단어로 ‘제르’가 있다. 제르는 ‘둘레’, 또는 ‘테’라는 뜻인데, 특이하게도 탈출기에만 나오는 단어이고, 그것도 계약궤와 제사상과 제단을 만드는 장면에서만 나온다. 모세는 계약궤의 제르(테)에 금을 둘러 금테를 입히라고 명령했고(탈출 25,11; 37,2), 제사상의 제르(테)와(25,23-25; 30,3-4), 제단의 제르(테)에도 그렇게 하라고(30,3-4; 37,26) 명령했다. 이처럼 제르는 어떤 물건의 가장자리를 의미하고, 자르는 공동체의 외곽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니 발음도 의미도 서로 통하는 말이다.

 

- 제르. 종교적 기물과 관련된 고대의 종교적 전문용어로, 매우 제한적을 쓰인다. 외래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말이다.

 

 

외래 문화를 소화하다

 

자르와 제르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외래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고대근동 세계의 작은 나라였다. 대제국을 세워 주변 민족을 지배하거나 천하를 호령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강대국의 간섭과 침략에 시달린 나라였다. 결국 나라를 잃고 유배를 간 적도 있다. 그런 약소국이기에 이스라엘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이웃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는 이처럼 외래어에서 온 낱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웃 문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유일무이한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이웃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위대한 종교의 요람으로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자르의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 사랑을 가르치셨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보자. 보편적 사랑을 위해서는 ‘동족의 잘못도 서슴없이 꾸짖으라’고 가르치신다. 오늘 복음도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고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해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잘하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19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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