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8)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요한 19,7)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심판대 선 예수님 -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작 ‘사형선고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내용의 흐름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 원로와 군사들은 그를 대사제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복음서는 그 해의 대사제가 카야파였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대사제의 집에서 신문을 받습니다. 대사제만이 아니라 아마도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최고의회의 구성원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우리가 아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는 사건도 일어납니다. 대사제와 최고 의회의 의원들은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그를 죽일 수 있는 구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음서의 기록들은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에 이미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과 상당히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점진적인 증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미 복음서의 시작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 이후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을 전합니다. 공관 복음은 자신의 신학적인 관점 때문에 예루살렘 입성 이후에 이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 ‘성전 정화 사건’이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갈등이 시작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사건으로 유다교의 지도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특별히 안식일과 관련된 여러 사건을 통해 갈등은 조금씩 커져갔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이러한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것은 ‘라자로를 소생시킨 사건’입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때에 이미 유다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 먹습니다.(요한 12,10) 이제 유다교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공관 복음은 이들이 여러 근거를 찾았지만 충분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형을 위해 당시에 로마를 대신해 유다 지방을 관할하던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데려갑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행정관이었고 총독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26년에서 36년까지 로마의 행정관으로 재임했습니다.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이 데려온 예수님을 신문하지만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고발한 죄목은 신을, 곧 하느님을 모독한 죄였습니다. 하지만 빌라도에게 인도된 예수님께 적용된 죄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황제에게 대적하는 정치적인 죄로 바뀝니다. 그렇기에 빌라도는 그에게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묻습니다. 아마도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의미를 둘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이 말이 지니고 있는 종교적인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해석되는 이 표현은 유다인들이 기다려온 하느님의 구원자를 의미하는 용어였습니다. 둘째는 이 용어의 시작이 기름부음을 받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선별할 때에 사용하던 행위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이것이 왕을 선별하는 행위였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메시아로 칭했다는 것이 유다인들이 고발한 죄목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요한 19,7) 하지만 사형선고를 받기 위해 빌라도에게 제안한 죄목은 황제의 권한에 반대해 자신을 임금이라 칭한 죄였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요한 19,12) 빌라도는 직접 예수님에게서 이러한 죄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유다교 종교 지도자들과 일부 유다인들의 뜻을 따라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공식적인 죄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입니다. 이 죄목 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메시아, 곧 구원자였다는 의미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5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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