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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여덟째 헤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8 조회수7,120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여덟째 헤트


하느님 창조 목적 어기고 탐욕에 죄짓는 인간 군상

 

 

막힌 땅

 

헤트의 가장 고대의 형태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땅을 표현했다. 인류 최초의 언어인 수메르어의 ‘에’(E)와 글자의 모양과 발음이 비슷하고 ‘막힌 땅’이라는 뜻도 비슷하다. 고대 이집트어에도 비슷한 글자가 있다. 헤트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는데, 90도 회전하여 마치 사다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더 단순화되어 마치 한자의 ‘날 일(日)’자 같아 보이기도 한다. 글자는 단순화되지만, 막힌 땅이라는 의미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가릿어 쐐기문자도 막힌 땅을 표현한 것이다.

 

이 글자는 더 단순해져서 아예 가로 획이 하나만 남았다. 그리스어 알파벳 ‘에타’의 대문자 형태는(H) 현대 서유럽 알파벳 H의 조상이 되었다. 한편 그리스어 에타의 소문자와 히브리어 헤트는 가로획이 모두 위로 올라붙은 형태다.(이상 그림1)

 

(그림1) 맨 왼쪽은 수메르어에서 ‘집’을 뜻하는 E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검은색) 그 옆의 것은 헤트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녹색) 우가릿어 쐐기문자에서도 가로막힌 땅이 표현되었다.(회색) 헤트는 90도로 회전하여 사다리나 일(日)자 모양처럼 발전하고(보라색) 점차 단순해져서 가로획이 하나만 남아 그리스어의 에타(H)가 된다.(청색) 이 형태가 라틴어를 거쳐 현대 서유럽어의 H가 되었다. 한편 가로획이 위로 올라붙은 형태는 그리스어 에타의 소문자에서 볼 수 있는데, 히브리어의 헤트도 같은 형태다.(붉은색)

 

 

한계, 놓치다

 

수메르어 에(E)는 (둘러싸인 땅에 지은) ‘집’ 또는 ‘방’을 의미했다. 그런데 서부셈어에서 헤트는 ‘가로막혔다’는 의미가 더 강조되어 ‘한계’ 또는 ‘잘못’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헤트로 시작하는 히브리어 단어 가운데 이런 의미를 잘 표현하는 것이 ‘죄’를 의미하는 ‘하타’라고 할 수 있다.

 

본디 하타의 기본적인 뜻은 (목표에서) ‘벗어나다’ 또는 (목표를) ‘놓치다’이다. 이사야서에 “백 살에 하타한 자를(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이사 65,20)는 표현이 있는데, 이렇게 하타는 어떤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잠언에 있는 “나를 하타하는(놓치는) 자는 제 목숨을 해치고”(잠언 8,36)라는 표현도 비슷한 의미다. 하느님의 지혜라는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하타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2) 본디 ‘(목표에서) 벗어나다’를 의미했지만, ‘죄짓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다. 다양한 변형으로 명사와 형용사로 쓰인다. 동사원형을 표현할 때는 위처럼 어근만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a)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위 글자는 ‘하타-’로 발음한다.

 

 

 

히브리어에서 하타는 ‘죄를 짓다’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인다. 이 말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명사나 형용사로 사용되는데, 지면의 한계 때문에 여기서는 복잡한 문법적 설명을 아쉽게도 모두 생략한다. 다만 하타의 몇 가지 용법만 살펴보도록 하자.

 

하타는 ‘죄’ 뿐 아니라 ‘죄인’도 의미했다. 창세기를 보면,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하타들(죄인들)이었다”(창세 13,13)고 한다. 시편의 첫 노래에서 ‘죄인들’로 옮긴 말도 모두 ‘하타들’이다.(시편 1,1.5) 죄는 사람이 짓는다. 죄 뒤에는 죄인이 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타를 하타하다’는 표현이 있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죄를 죄짓다’는 말인데, 죄짓는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므로, 우리말로는 ‘무거운 죄를 짓다’, ‘큰 죄를 저지르다’ 정도로 옮기면 적절하다. 비탄의 노래 애가의 첫머리에 이 표현이 쓰였다. “예루살렘은 하타를 하타하여(무거운 죄를 지어) 혐오 거리가 되어 버렸다.”(애가 1,9) 광야에서 미르얌과 아론과 모세가 갈등을 빚었을 때, 미르얌이 피부병에 걸리자 미르얌을 대신하여 아론은 모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빌었다. 그는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여 하타한 하타의 값을(저지른 죄의 값을) 우리에게 지우지 마십시오.”(민수 12,1-11) 아론은 자신이 아니라 누이를 대신하여 죄의 용서를 청했다.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탈출 32,1-6)은 큰 죄였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하타를 하타했다(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32,30) 그는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백성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며 빌었다. “아, 이 백성이 하타를 하타했습니다(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32,31-32) 이처럼 중재자가 백성을 대신하여 용서를 빌었기에 백성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었다. 우리의 큰 죄 때문에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5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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