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쓰기 느낌 나누기

제목 [성지순례] 들꽃으로 피어나다 - 성거산 성지
작성자명현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12 조회수669 추천수2 반대(0)
 
들꽃으로 피어나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방문 축일이다.
예수회 후원회의 임원들과 성거산 성지로 순례를 갔다.
 
경부 고속도로 천안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서 성거, 입장을 지나
구불구불 산길따라 올라가는데 도대체 이런 곳에 성지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오르는 오르막길에 작고 귀여운 다람쥐가 마중을 나왔다가 금방 숨어버렸다.
 
어디쯤인지 잘 몰라서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군부대가 나왔다.
차를 되돌려 내려와 관광버스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보니 성모님의 광장이 있었다.
순례객들이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올라왔다.
 
미사 10분 전, 성당을 찾는데 도대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보고 신부님께서 내려오라고 부르셨다.
 
성당은 겨우 마루 바닥과 지붕만 있었다.
한쪽으로 밀쳐진 비닐막이 있는 걸 보니 겨울이나 비가 올 때에 치는 것인가 보다.
벌써 자리를 잡고 기다리시는 순례객들과 함께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하였다.
 
제대 아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랗게 피어 있는 야생화였다.
눈을 들어 보니 제대 뒤편 고상은 나무 줄기로 둥글게 엮고
가운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제대 옆에 커다란 호롱도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산바람이어서 그랬는지 늦은 봄날이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질 만큼 찬 바람이 불었다.
깊은 산 중,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선, 차령산 기슭 해발 579m,
성거산 성지는 이렇게 높은 곳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들어와 숨어 살던 곳,
고려 태조 왕건이 오색 구름이 영롱한 산을 바라보며
신령이 사는 산이라 하여 이름지어 준 성거(聖居) 산,
이름도 모를 순교자들이 잠든 곳에
울창한 나무들이 숲이 되어 그분들의 자취를 숨기려해도
형형색색 들꽃들이 그 얼을 꽃피운 듯하였다.
 
미사를 드리려 산 중에 앉아 있으니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던 언덕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부님께서는 자상하게도 성지에 대한 모든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오늘은 순교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라고 하셨다.
이름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그분들처럼......
 
미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마련된 음식을 가져다가
미사를 드렸던 그 자리에서 먹었다.
본격적인 성찬의 전례인 셈이다.
그땐 그랬겠지.
예수님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이렇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겠지.
 
식사 후에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
커다란 호롱마다 103위 순교 성인께 기도하며 묵상하는 길이었다.
호롱 주변에는 야생초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친절하게 이름표를 붙여 주어서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말발도리, 노루귀, 조개나물, 무늬둥굴레, 각시붓꽃.......
 
언니들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산길을 따라 걸었다.
비탈길에는 침목을 놓아 두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 길은 똑바로 난 길도 아니고 포장된 길도 아니었다.
그냥 생긴 그대로, 자갈과 떨어진 꽃잎들이 뒹구는 길.
결코 화려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길을 성인들께서 걸으셨구나.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 앞에서 잠시 묵상하며 기도드렸다.
작은 봉분들이 마치도 성인들의 자취인양 부풀어 있었다.
신부님께서 교우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셨다.
 
오래된 나무가 죽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흙에 묻힌 돌담이 그 옛날 박해를 피해 몸 숨기고 살았던
신앙의 선조들의 삶의 자리를 알려 주었다.
첩첩 산중 깊은 골까지 숨어 들어서 신앙을 지키다가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나신 분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했다.
 
야생화를 노래한 아름다운 시들이 곳곳에 있어서 자꾸 발길을 멈추었다.
이름 없이 살다간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듯한 싱그러운 바람이
꽃 향기를 가득 실어다 주었다.
 
등산화 신으시고 우리를 안내해 주시던 신부님께
야생초로 만든 귀한 차 대접 받고
선물까지 받아들과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배웅하는 다람쥐를 보았다.
아까 그 다람쥐였을까?
 
2008.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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