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쓰기 느낌 나누기

제목 [성지 순례] 단풍 곱게 물들다 - 성거산 성지 2
작성자명현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8 조회수661 추천수1 반대(0)

온 산에 단풍물이 곱게 든 성거산 성지

억새와 갈대가 무성한 능선을 지나며 창조주 하느님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운 마음 애태우다가 달려와 줄무덤 앞에 서니

늦게야 찾아온 송구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을 밟으며 걷는 십자가의 길

순교 성인들이 말을 걸어 오시는 듯하여 마음의 귀를 쫑긋 세웠다.

 

글라라 고모님(내 친구의 고모님)께서는 자꾸 미안하다 하셨다.

내년에는 당신이 또 올 수 없을지 몰라서, 어쩜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따라나섰지만

젊은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눈치가 보이신다고......

 

그러나 나는 안다. 그분들이 계신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젊은 층이 많은 신설 본당에서 기도 부대가 되어 주시는

어르신들이 계셔 주시기만 해도 얼마나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지......

 

어느 쪽을 바라 보아도 예쁜 그림이 되는 나무들이 

자꾸 환호성을 자아내게 했다.

 

비닐 커텐으로 바람을 막아 미사를 드리는 성당

제대 아래 꽃을 피우던 야생초는 시들어 볼품이 없지만

이쁘던 자태를 기억하기에 그 모습이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세월에, 시간에, 자연에 그저 순응하는 삶

그렇게 야생화는 피었다가 지고

잎새를 물들이고 떨구어내는 자유로움을 배우라 한다.

 

단풍 빛깔의 영대를 두르시고 드리는 순교자 신심 미사

어느 시인은 "떨어지는 낙엽은 하느님이 보내신 편지"라고 했다.

 

주님만 바라보고 목숨마저 바친 순교자들의 피로 거룩해진 땅,

그 땅에서 꽃들이 피었다가 지고 단풍이 들고

씨앗으로 열매 맺고 죽으니 그 죽음조차 숭고하다.

 

끝없이 포기하고 내려놓지 않으면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처럼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나보고 내려놓으라고 한다.

삶의 무거운 짐, 걱정, 욕심, 불평, 이기심, 명예, 교만.......

 

복음으로 사는 것은 내려놓음이라고

나를 비워야 그리스도를 받아 모실 수 있다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도 냉담자 같은 기분이 들었던 요즈음이었다.

어디론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던 나약한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달려온 성지였다.

 

그분들은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시려 모여들었지만

나는 오늘 일상을 탈출한 피난민 같은 마음임에도

따사롭게 품어주시는 온기를 느낀다.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에 피어나는 들꽃들을

그분들의 분신처럼 여기며 가꾸시는 신부님의 평화로운 얼굴에서

내게로 전염되는 평화, 사랑, 자유........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날아온 벌 한마리가 포도주병 언저리에 앉았다.

 

제대 옆에 두 손을 포개어 가슴에 모으신 성모님을 모셔 두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신 어머니께서 삶의 순간마다 "예"라고 대답해야 함을 일깨워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무명 순교자들의 삶도 기억하시고 삶의 터전을 드러내주셨다.

박해를 견디어 낸 우리 신앙의 못자리이며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교우촌과

순교자 묘역을 가꾸고 알리는 일에 소명을 갖고 계신 신부님 뒤로

덩굴로 만든 고상의 예수님이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미사를 마치고 맛있는 밥(구역장님이 해 오신 찰밥)을 먹었다. 

일행들은 서둘러 순교자의 길을 갔으나 나는 여유롭게 머물고 싶어서 뒤쳐져

천천히 성모님의 광장을 지나 제2순교자 묘역에 가면서 수사님 한분을 만나

소중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하루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기도드렸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함이 못내 아쉬워 곱게 물든 단풍잎 몇개 주워서

책갈피에 꽂으며 '또 와야지......' 하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혜 3,9)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마태 10,28)     -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 중에서(2008.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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