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9)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 내리셨다"(사도 10,44)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복음 선포 2막' 오르다 - 미셀 코르네유 작 ‘성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의 세례’(부분), 17세기, 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제공합니다. 이 전환점은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에 아주 중요합니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이 두 책은 내용의 전개에 따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루카는 공관복음이 보여주는 의미를 그대로 따릅니다. 복음은 예수님 활동의 시작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을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복음서는 예수님의 삶 전체를 인간의, 우리의 구원을 향해가는 사건으로 소개하는 셈입니다. 그분의 지상 활동은 이미 시작에서부터 십자가의 구원을 지향한다는 것이 공관복음의 신학입니다. 루카 역시 이러한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서의 2부에 해당되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활동이 끝난 예루살렘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은 책의 시작에서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여러 번 언급합니다. 승천과 마티아 사도의 선출 그리고 성령 강림 모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끝난 예루살렘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하는 장소가 됩니다. 가장 먼저 복음 선포의 대상이 된 이들은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들”입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는 이러한 사실을 잘 표현합니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사도 2,14) 제자들의 활동은 우선적으로 유다인들을 향해 있고 지역적으로 본다면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입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신앙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곳으로부터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은 사마리아입니다.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와 함께 심해진 박해 때문에 제자들은 흩어져 여러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와 함께 소개되는 것이 필리포스의 사마리아 선교입니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사도 8,5) 그리고 베드로의 환시와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는 이제 복음이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구분이 더는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지역적으로 본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스라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 더 나아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선포되고 마침내 이방인들에게도 선포된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활동이 갈릴래아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이라면, 사도행전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를 거쳐 다른 모든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은 ‘보편적 구원’이라는 신학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이제 믿음을 갖게 된 모든 이들은, 그 출신이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하느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사도 10,43)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는 구원이 출신과 상관없이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사도 10,45)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구원을 위한 희생이라고 전하고 사도행전은 그 구원의 복음이 제자들과 신앙인들을 통해 온 민족에게,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루카는 결국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 갈릴래아에서 시작된 복음의 선포가 제자들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는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장소인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21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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