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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하캄(지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21 조회수11,722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하캄


최고의 지혜는 하느님 가르침

 

 

하캄은 지혜를 의미한다. 오늘은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와 현인을 알아보자.

 

하캄. 형용사로 ‘솜씨 좋은’, ‘경험 많은’, ‘지혜로운’, ‘(하느님께) 충실한’ 등의 뜻이고, 명사로 ‘장인’, ‘기술자’, ‘현인’ 등을 의미한다. m에 해당하는 검은색 글자(멤)는 단어의 끝에서 형태가 바뀐다(미형).

 

 

경험과 솜씨

 

하캄은 형용사로 ‘지혜로운’이란 뜻이고, 명사로 쓰이면 ‘지혜로운 자’를 의미한다. 흔히 ‘지혜’라 하면 정신적으로 고결한 가치나 추상적인 깨달음을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밤낮으로 책을 많이 읽어 경전의 이치를 통달한 선비를 연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의 하캄은 원래 능숙한 솜씨, 재주 많은 일꾼, 경험이 풍부한 장인(匠人) 등에 쓰이는 말이었다.

 

역대기 상권을 보면, 다윗 임금이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지을 것을 준비하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윗은 아들에게 “너에게는 많은 일꾼이 있다”고 말하고, 성전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채석공과 석수와 목수”를 거론한다. 하지만 성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경험 많고 능숙한 일꾼들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다윗은 “그 밖에도 갖가지 일에 뛰어난 온갖 하캄들(장인들)”(1역대 22,15)을 든다.

 

이처럼 하캄, 곧 ‘지혜로운 자’는 본디 손으로 노동하는 장인과 기술자에게 쓰는 말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주색 모직과 자홍색 양모 옷은 모두 다 하캄들(기술자들)의 작품입니다”(예레 10,9)고 말했고, 이사야 예언자는 “하캄한(재주 있는) 장인”(이사 40,20)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롭게도 고대 이스라엘에는 곡을 하는 것이 특별한 기술에 속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초상이 나면 여인들의 곡소리가 초상집에 울려 퍼졌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아예 “여자 곡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곡을 하캄하는(곡을 잘하는) 여자들”이었다(예레 9,16). 고대 이집트에도 이런 여자 곡꾼들이 있었다.

 

- 호크마. 명사로서 ‘기술’, ‘경험’, ‘지혜’ 등으로 옮긴다. 세속적 삶의 ‘기술’과 하느님의 ‘지혜’를 가리키는데 모두 쓴다. ‘-a’는 여성 단수형 어미다. 핑크색 글자는 ‘악센트 없는 폐음절’에서만 o로 발음된다(카메츠 하툽).

 

 

현인

 

본디 지혜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달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경험과 통찰을 통해서 삶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 곧 현인들이 특정한 행위(A)와 그에 따른 특정한 현상(B)을 쉽게 설명하는 짧은 말들을 많이 남겼다. 이를테면 매를 아끼면(A) 자식을 망친다(B)든지, 좋은 친구를 사귀면(A) 인생에 도움이 된다(B)든지,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면(A) 무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B) 등의 말들이다. 대개 인생을 오래 살면 어느 정도 수긍하는 말들로서, 인간사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시대와 지역의 차이를 넘어, 유사한 격언이나 속담이 인류사에 많이 존재하지 않는가.

 

고대 근동의 현인들은 이런 삶의 지혜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먼 나라의 지혜를 읽고 배우기를 즐겨 했고, 때로는 자비를 들여 ‘지혜 수집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들은 이렇게 수집한 지혜를 그저 베끼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깊이 성찰하여 비판적으로 선별하여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런 면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글만 읽는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라 경험과 성찰을 통해 삶의 구체적 이치를 깨달은 경륜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호크모트. 복수형으로 ‘지혜들’이란 의미다. ‘-?t’는 여성 복수형 어미다. 지혜를 복수형으로 칭한 이유는, ‘엘로힘’처럼 ‘존엄의 복수’(pluralis majestatis)로 이해할 수 있다. 곧 호크모트는 최고의 지혜이신 하느님을 ‘지혜님’으로 높여 부르는 말로 새길 수 있다. 하늘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무성셰와).

 

 

이스라엘의 현인

 

고대 이스라엘은 선진 강대국들의 현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구약성경은 ‘이집트의 모든 하캄(현인)’(창세 41,8)이나 ‘바빌론의 하캄들(현자들)’(예레 50,35)을 언급한다. 약소국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이웃나라의 보편적 지혜를 폭넓게 수용하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많은 지혜들이 고대근동의 지혜에 큰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야훼 하느님의 가르침(토라)과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요, 하느님이야말로 가장 높으신 지혜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런 성찰은 시편에 잘 드러난다. “누가 하캄하게(지혜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이를 마음에 간직하여 주님의 자애를 깨달아라.”(시편 107,43)

 

참 신학자란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처럼 삶의 구체적인 지혜를 성찰하여 나누는 사람이 아닐까? 경전과 교리에는 밝지만 정작 세상의 고통에는 캄캄한 창백한 지식인 같은 사람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21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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