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1)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
박해자, 주님 만나는 체험 후 복음 선포자 되다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작 ‘성 바오로의 개종’,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사도들의 행적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흔히 ‘이방인의 사도’라 불리는 바오로는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방에 널리 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그의 인생 역시 상당히 극적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의 회심 이전의 이름인 사울은 스테파노의 순교 때에 처음 등장합니다. “스테파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사도 7,58) 이후 사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로 소개됩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사울은 유다교에 충실했던 인물로 소개됩니다. 그의 이름인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 왕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에 대한 많은 내용은 그의 소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몇 번에 걸쳐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그리고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안에서 이런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사도 22,3) 바오로는 또 말합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필리 3,5) 바오로의 표현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열성적인 유다인이었는지, 더 나아가 얼마나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게 살았던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이자 바리사이였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역시 사도행전에서 언급됩니다. 그는 사도들이 유다교로부터 박해당할 때에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던 인물이었습니다.(사도 5,34-39) 사울은 열정에 넘쳐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은 그를 박해하는 자에서 선포하는 자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체험은 사도행전 9장 3-19절과 22장 6-21절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하늘에서 빛이 비치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흘’은 성경 안에서 하느님과 관련된 표현으로 마치 하느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준비의 기간처럼 표현됩니다. 또한, 사울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보속의 기간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명을 받기까지 이러한 시간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니아스를 사울에게 보냅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니아스를 만나 세례를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러한 체험 이후 사울은 ‘바오로’라고 불립니다. 바오로는 그의 로마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가 됩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그에게 ‘사도’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원래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조금 넓은 의미로 복음 선포에 기여한 바오로와 그의 협력자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부터 복음 선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회심 이후 그에게 주어진 시련 역시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여전히 자신들을 박해하는 자로 받아들이고 유다인들 역시 반역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사도 9,20-25)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열성을 다해 자신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그의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교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4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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