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탈, 게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주님 말씀 히브리어로 탈은 이슬이고 게솀은 비(雨)다. - 탈. 이슬을 의미한다. 풍요의 원천이었다. 아름다운 이슬과 풍요의 이슬 우리나라는 땅은 작아도 물은 비교적 풍부하다. 강, 개울, 샘, 지하수 등이 넉넉하여 사막이나 광야 같은 메마른 땅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근처 중동지역은 지구상에서 물이 귀한 곳으로 손꼽힌다. 큰 강이나 해안가를 제외하면 대체로 메마르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 그래서 구약성경과 한국인의 탈(이슬)에 대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강과 개울이 흔한 우리나라에서 이슬이 품은 물은 별 쓸모가 없다. 그래서 이슬은 새벽에 영롱하게 맺힌 아름다움의 상징이요, 해가 뜨면 곧 사라져버리기에 안타깝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메마른 이스라엘에서는 이슬도 물의 원천으로서 어엿한 풍요의 상징이다. 모세의 유언 가운데 “나의 말은 탈(이슬)처럼 맺히리라”(신명 32,2)는 구절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언뜻 하느님의 말씀이 영롱한 이슬처럼 맺히는 것, 지극히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이 풍요롭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풍요의 축복 이사악이 늙어서 눈이 침침해지자, 레베카는 꾀를 내어 에사우가 받을 축복을 야곱이 가로채게 하였다. 이사악은 에사우와 야곱을 착각하였고, 결국 야곱에게 축복하였는데, 그의 축복에 이런 표현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탈(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창세 27,28). 탈이 풍요의 상징임이 잘 드러난다. 한편 복을 빼앗긴 큰아들 에사우는 자신도 축복해 달라며 목놓아 울었다. 그러자 이사악은 “네가 살 곳은 / 기름진 땅에서 / 저 위 하늘의 탈(이슬)에서 /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창세 27,39)고 답했다. - 하늘의 이슬. ‘하늘의 이슬’이란 의미로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의미한다. 이사악이 빌어준 축복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핑크색의 멤(m)은 단어의 끝에서 모양이 달라진다(미형).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이사악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사악을 자칫 비정한 아버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을 가장 귀하게 여겼던 창세기 조상들의 종교적 심성을 잘 드러낸다. 비록 아들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탈(이슬)이 얼마나 소중한 풍요의 원천인지도 잘 볼 수 있다. 비의 다양한 표현 한편 하늘에서 퍼붓는 비는 게솀이라고 한다. 게솀을 표현하는 동사들은 다채로운데 지면의 한계 때문에 여기서는 몇 가지만 적는다.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을 ‘게솀이 내린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말과 같다. 엘리야 예언자 때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땅에 게솀이(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1열왕 17,7)고 했다. 큰 비는 그저 ‘게솀이(비가) 있다’고도 했다. 노아의 홍수를 보면,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게솀이 있었다(비가 내렸다)”(창세 7,12)고 되어 있다. - 게솀. 비(雨)를 의미한다. 김멜(g)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만 찍는 기호다(약한 다게쉬). 한편 게솀(비)을 ‘온다’와 ‘간다’로 표현하기도 했다.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고 권유하면서 하느님은 ‘게솀(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3)고 말했다. 아가서를 보면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 게솀은 갔다(장마는 걷혔다오)”(아가 2,11)는 표현도 있다. 이런 표현은 ‘비님이 오신다’ 또는 ‘비가 가신다’는 우리말의 표현과 무척 비슷하니, 성경이 참 가깝게 느껴진다. 정의의 비와 복의 비 하느님이 내리시는 게솀은(비는)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여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사야 예언자는 나무를 심으면 “게솀이(비가) 그것을 자라게 한다”(이사 44,14)고 말했다. 요옐 예언자는 게솀을(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외친다.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 주님이 너희에게 / 정의에 따라 /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 주님은 너희에게 게솀을(비를) 쏟아 준다”(요엘 2,23).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게솀은 ‘풍요의 비’일 뿐 아니라 ‘정의의 비’이기도 하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복의 비(福雨)를 약속하셨다고 전한다. “나는 그들과 내 동산 둘레에 복을 내리겠다. 또 제때에 게솀을(비를) 내려 주리니, 복의 게솀이 될 것이다(그 비가 복이 될 것이다)”(에제 34,26).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께서 복과 정의의 비처럼 내리시길 기도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4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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