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야하드, 에하드
남북이 ‘하나’ 되게 간절히 기도드리자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민족의 참된 화해와 일치를 염원하는 날이다. 마침 요드로 시작하는 ‘야하드’는 ‘함께’라는 뜻이고 이 말과 어근이 같은 ‘에하드’는 ‘하나’라는 뜻이니, 오늘 묵상에 알맞은 단어라고 할 수 있다. - 야하드. 주로 부사로 쓰이는데 ‘함께’, ‘모두’, ‘동시에’ 등을 의미한다. 함께, 모두 야하드는 주로 부사로 쓰이는 말로서, ‘함께’를 의미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시편은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야하드(함께) 환호하여라”(시편 98,8)고 노래한다. 하느님의 지혜는 만민에게 보편적으로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은 “천한 사람도 귀한 사람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야하드(다 함께) 들어라”(시편 49,3)고 노래한다. 야하드는 긍정적 맥락에만 쓰이는 말이 아니다. 곤경과 비탄에 빠진 사람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야햐드(다 함께) 저를 거슬러 수군대며 저에게 해로운 일을 꾸밉니다”(시편 41,8)고 주님께 호소했다. 함께하는 것은 모두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하드는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자면 “진정 사람이란 숨결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야하드(모두) 저울판 위에 올려놓아도 숨결보다 가볍다”(시편 62,10). 이사야 예언자는 유명한 포도밭 노래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으면 그것을 쳐 없애려고 달려들어 야하드(모조리) 불태워 버린다”(이사 27,4)는 주님의 경고를 전한다. 나란히, 똑같이, 더불어 야하드에서 파생된 말로 야흐다우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서로 함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말인데, 다양한 의미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군사적 리더십에 뛰어난 다윗은 모든 군인들에게 정의롭게 분배해야 한다는 의미로 야흐다우라는 말을 썼다. 그는 “싸우러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뒤에 남아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다 야흐다우해야(똑같아야) 하오”(1사무 30,24)라고 말했다. - 야흐다우. 야하드에서 파생한 말로 ‘야흐다우’에 가깝게 발음하며, ‘서로 함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보라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달레트(d)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한다는 표시이므로(약한 다게쉬), d를 겹쳐 쓰지 않는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의 일가는 주님의 은총으로 재산이 많이 불어났다.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야흐다우(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창세 13,6). 결국 그는 조카 롯과 땅을 나누었다. 주님의 사랑을 담뿍 받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땅을 나눈 것은 우리나라의 분단과 무척 대조된다. 우리나라의 분단과정은 가난과 고난을 동반하지 않았는가.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모티프로 유명한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 노래(이사 11장)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기 좋은 본문이다. 사실 이 노래에서 야흐다우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야흐다우(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6절).” 그리고 “암소와 곰이 야흐다우(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7절). 하느님 나라는 모든 벽을 넘어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상태다. 그 나라에서는 자연계의 천적들마저 더불어 나란히 평화롭게 산다. 분단으로 고통받는 우리민족에게 희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 첫째, 한마음 - 에하드. ‘하나’ 또는 ‘첫째’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야하드과 어근이 같은 에하드는 ‘하나’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우리 신앙에서 에하드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스라엘의 주님은 한 분이시니,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에하드이신(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고 외쳤다. 에하드에는 ‘첫째’라는 뜻도 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에하드 날(첫날)이 지났다”(창세 1,5). 에하드와 야하드를 묵상하는 가운데 다윗의 일화가 인상 깊게 마음에 남는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1역대 11장), 여러 지파가 다윗에게 와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 전까지 사울파와 다윗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지만, 다윗은 모두를 아우르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우러 왔다면, 나도 여러분과 야하드한 마음이(한마음이) 되겠습니다”(1역대 12,18). 남과 북이 서로 좋은 마음으로 돕다 보면 언젠가 에하드한 민족이 되지 않을까. 극단적 분단을 종식하고, 남북이 더불어 나란히 평화롭게 살게 해 달라고 한 분이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25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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