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야민, 스몰
세상 구원한 왼손, 은총 가득한 오른손 히브리어로 야민은 오른쪽을 스몰은 왼쪽을 의미한다. 좌우에 대한 느낌은 우리말과 히브리어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 야민. 오른쪽과 남쪽을 의미한다. 바르고 좋고 풍요롭다는 의미도 있다. 바른 오른쪽, 어리석은 왼쪽 야민(오른쪽)에 대한 느낌은 우리말과 히브리어에 차이가 없다. 오른쪽은 바른쪽이요 강하고 중요한 쪽이다. 지혜의 임금 솔로몬은 효심도 컸던 것 같다. 그는 어머니가 찾아오자 “일어나 어머니를 맞으며 절하고 왕좌에 앉았다. 그리고 임금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의자를 가져오게 하여 그를 자기 오른쪽에 앉게 하였다.”(1열왕 2,19) 어머니의 의자를 하필 야민(오른쪽)에 둔 것은 오른쪽이 더 중요한 쪽이라는 의미다. 모세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담뿍 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주님의 영화로운 팔이 모세의 야민(오른편)에 서서 걸어갔기 때문에(이사 63,12) 이집트 탈출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주님께서 야민에 계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은총이요 영광이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당신께서 제 야민에(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시편 16,8)라고 노래한다. 이에 반해 스몰(왼쪽)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지 못했다. 코헬렛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지혜로운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어리석은 마음은 왼쪽에 있다.”(코헬 10,2) 사실 야민(오른쪽)을 더 중하게 여기고 스몰(왼쪽)을 폄하하는 인식은 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말도 ‘오른쪽’을 ‘바른쪽’이라 하지 않는가. 영어나 독일어 등도 ‘오른쪽’(right, recht)은 ‘옳은 쪽’을 뜻한다. 아마도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인간의 조건 때문에 이런 인식이 널리 퍼졌으리라 짐작한다. - 스몰. 왼쪽과 북쪽을 의미한다. 왼쪽으로 구원하신 하느님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 하필 왼손잡이를 선택하시는 장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판관 에훗을 들 수 있다. 모압 임금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괴롭히자 백성은 울부짖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 그는 왼손잡이였다.”(판관 3,15) 에훗은 왼손잡이라는 독특함을 잘 살려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그는 왼손잡이였기에 칼을 오른쪽 허벅지에 차서 에글론 가까이 갈 때까지 칼을 숨길 수 있었다. 그는 공물을 갖다 바치는 척하면서 단둘이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절호의 기회가 오자 그는 “왼손을 뻗어 오른쪽 허벅다리에서 칼을 뽑아”(판관 3,21) 에글론을 암살하고 귀신같이 빠져나와 이스라엘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하느님의 눈에는 어떤 차별도 없는 것 같다. 하느님은 당신이 쓰시고 싶을 때 당신의 방식대로 쓰신다. 에훗의 경우처럼 오히려 소수자가 더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으니, 창조된 그대로 모든 사람은 귀하다. - 왼손. 왼쪽’이란 의미인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벗어나지 말라)’는 문맥에서 자주 쓰인다. ‘그리고(? 파란색)’의 형태가 다양함은 앞에서 보았다. 특이한 좌우의 용법 구약성경은 인간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할 때가 있다. 하느님 백성이 서로 다툰 이야기도 많이 전하는데, 벤야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가 싸운 이야기도(판관 19-20장) 그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특이하게도 “왼손잡이 정병 칠백 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머리카락 하나 빗나가지 않게 맞히는 돌팔매꾼”(판관 20,16)이다. 좌완(左腕) 투수가 훨씬 정확하다는 기록은 이곳 외에 전혀 등장하지 않으니 참으로 특이한 기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야민은 남쪽을 스몰은 북쪽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런 용법은 우리말에 없다. 얼굴을 해 뜨는 동쪽에 두면 왼손은 북쪽을 오른손은 남쪽을 가리키니, 고대 셈족의 사람들은 동쪽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들인 것 같다. 남쪽은 따뜻하고 풍요로운 법이다. 그래서 야민(오른쪽)은 풍요롭고 넉넉하다는 의미까지 얻게 되었다. 현대 아라비아 반도 맨 남쪽에 위치한 나라 이름이 예멘(Yemen)이다. 예멘과 야민은 어근이 같은 말이다.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다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자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탈출 14,22) 이 장면은 마치 우리 인간의 운명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느님이 제시해 주신 길을 올바로 걸어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좌우에서 지켜주실 것이다. 이 기적을 체험한 모세는 주님이 명령하신 길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번 남겼다(신명 2,27; 17,11.20). 좌파든 우파든 너무 지나쳐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면 하느님 눈에 들지 못할 것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9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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