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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야다, 이르아(알다, 경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5 조회수20,377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야다, 이르아


하느님 참뜻 깨닫고 그분을 경외하라

 

 

요드로 시작하는 ‘야다’는 몸과 마음을 써서 ‘알다’를, ‘이르아’는 ‘경외’를 뜻한다.

 

- 야다. ‘알다’를 의미하는 동사다. 몸과 마음과 체험으로 아는 것을 뜻했다. 동사는 어근만 대문자로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를 넣어 읽는다.

 

 

체험으로 알다

 

‘야다’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깨닫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말을 ‘알다’ 보다 ‘깨닫다’로 옮기면 뜻이 잘 통할 때가 있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이 태어날 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였다.(판관 13장) 그들은 천사인 줄 모르고 지극히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천사가 제단의 불길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마노아는 그분이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야다했다(알았다).”(판관 13,21) 천사의 말씀과 행적을 체험하고야 그들은 천사임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작은 백성이었고 그들의 역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을 체험한 모세는 이 백성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하다. 그는 유언에서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너희 마음으로 야다해야 한다(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신명 8,5)는 말을 남겼다.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참뜻을 깨달아야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진심 어린 당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근대사도 혼란과 식민지배와 전쟁 등으로 점철되지 않았던가.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마음 깊이 깨달으라는 당부는 마치 우리에게 하시는 것 같다.

 

 

마음을 쓰고 보살피다

 

때로 ‘야다’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기울여 보살피는 의미가 이 말에 깃들어 있다. 이집트로 간 요셉은 포티파르의 종이 되었고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주인의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포티파르는 요셉을 깊이 신뢰했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요셉의 손에 내맡기고, 그가 있는 한 자기가 먹는 음식밖에는 야다하지(마음을 쓰지) 않았다.”(창세 39,6) 설마 주인 포티파르가 음식만 아는 백치(白痴)가 되었겠는가. 그는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기고 일절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 다아트. ‘야다’의 명사형으로 지식, 분별, 식별 등을 뜻한다. 달레트(회색 d)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 사용하는 기호다(약한 다게쉬).



시편에 나오는 “당신께서 저의 가련함을 굽어보시어 / 제 영혼의 곤경을 야다하시고(살펴 아시고)”(시편 31,8)라는 구절에도 이 말의 뜻이 잘 드러난다. 굽어보시어 알아주시는 것, 곧 마음을 써 주시는 것이 야다하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이 야다하시는(알아주시는) 것은 하느님이 보살펴 주신다는 의미와 같다. 하느님은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을 야다하시는(알아주시는) 분이시다”(나훔 1,7)는 예언자의 고백은 주님께 피신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사랑하다

 

‘야다’는 ‘성적 관계’를 맺는 의미도 있다. 이 말은 성(性)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는 데 도움을 준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마음을 쓰고 더 보살피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태초에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를 야다하니(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창세 4,1)란 표현에 이런 의미가 깃들어 있다.

 

성은 사랑의 표현이다. 성의 본질은 쾌락이 아니라 상호 보살핌과 희생과 친밀한 인격적 소통에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야다’를 깊이 성찰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 이르아. ‘경외’를 의미한다. 지혜의 근원이자 시작인 ‘하느님 경외’를 표현하는데 자주 쓰인다. 보라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기술과 식별

 

‘다아트’는 ‘야다’의 명사형이니 흔히 ‘지식’으로 옮긴다. 하지만 다아트는 머리가 아니라 몸을 써서 얻은 지식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 말을 ‘기술’로 옮기기도 한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기 위해 최신 기술자 히람을 외국에서 모셔왔는데, 그는 “청동을 다루는 온갖 일에 뛰어난 지혜와 지식과 다아트를(기술을) 가지고”(1열왕 7,14) 있던 자였다. 이런 의미에서 다아트를 ‘일솜씨’로 옮기기도 한다.(탈출 31,3)

 

 

최고의 지식은 하느님 경외

 

하느님을 이르아(경외)하는 것은 최고의 다아트(지식)이다. ‘하느님 이르야’(하느님 경외)란 표현이 구약성경에는 자주 나온다.

 

주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원이요(시편 111,10) 지혜의 시작이다.(잠언 9,10) 주님을 경외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일이니, 영원히 이어지리라.(시편 19,10)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23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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