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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5 조회수4,915 추천수0

[특별기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에


수난에 앞서 부활의 영광 미리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구원의 은총 주어질 것 약속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변모’.

 

 

8월 6일은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신 일을 기념하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다. 마태 17,1-2은 이렇게 이 사건을 전한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처럼 하얘졌다는 것은 예수님이 천상적 형상으로 변했음을 뜻한다. 교부들은 일찍부터 이 사건을 부활과 연결하였다. 주님께서 수난과 죽음에 앞서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습이 변하다’로 옮긴 그리스어 동사는 μεταμορφοω다. 이 동사는 고대 문학에서 신들의 변모를 기술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신들이 모습을 바꿀 수 있고 또 그러한 능력을 공개적으로 행사하기도 한다’는 믿음은 여러 종교에서 두루 발견된다. 특히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신들의 변모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발달되었다. ‘형상의 변화’ 또는 간단히 ‘변모’를 뜻하는 μεταμορφωσιs가 문학 유형으로까지 자리 잡았을 정도다. 이 유형의 작품에서는 신들이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모티프가 주를 이룬다.

 

신비주의 문학과 묵시문학에서는 변모 개념이 확장되어 신이 아닌 인간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바뀌는 내용이 다뤄진다. 특히 헬레니즘 신비종교에서는 변모가 신격화(deification)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신비종교 입문자가 신을 직관함(Visio dei)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바로 ‘신과 같은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입문 예식에 참가한 이가 ‘직관’을 통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신들의 영역으로 인도되는데, 이때 형상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형상의 변화란 육체가 물질의 굴레에서 벗어나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재탄생), 신격화에 다름 아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신비종교의 μεταμορφωσιs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다교 묵시문학 전통에 더 가깝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줄 때, 교묘하게 꾸며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2베드 1,16)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도 이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유다교 묵시문학에서도 변모 개념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변모, 곧 형상의 기적적 변화가 종말론적 구원의 선물로 간주된다. 종말 때 부활의 은총을 입은 이들이 형상의 변화를 겪게 되리라는 것이다. 2바룩 51,3: “그들 얼굴의 형상이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51,5: “그들은 천사같이 눈부신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 51,10: “그들은 천사들을 닮게 되고 별들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곧 아름다움에서 빛남으로, 빛에서 영광의 광채로 바뀔 것입니다.” 51,12: “의인들의 영광이 천사들의 영광보다 커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이러한 묵시문학 전통 안에서 읽을 때 보다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 새 시대에 의인들에게 일어나기로 약속된 ‘변화’(1코린 15,51-52)가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께 먼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앞으로 당신께서 겪게 될 고난과 십자가가 끝이 아니며, 그로써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시리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는 듯하다. 이 사건은 제자들이 종말 때 누릴 구원의 은총을 앞당겨 보여 주는 사건임과 동시에 그러한 은총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확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셨듯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영광스럽게 변하리라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변모’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일어나기 시작한 현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변모’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2코린 3,18; 로마 12,2). 2코린 3,13-17에서 사도는, 모세의 옛 계약이 마음에 너울을 덮는다면 그리스도의 새 계약은 그 너울을 벗겨낸다고 가르치면서 새 계약이 옛 계약보다 우수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봄(visio)으로써 그분의 모습 εικων으로 변해가며, 이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시는 분은 영이신 주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이러한 변모는 외적 변화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실제로 μεταμορφοω가 내적 변화를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 로마 12,2도 내적 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νουs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여기서는 변모 과정이 직설법이 아니라 명령법으로 표현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제 변모는 특정한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명령’이 된다. 정신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으로 변하라는 것이다. 이 명령은 이 시대와 다가올 시대의 구분이라는 맥락에서 읽을 때 더 쉽게 이해된다. 그리스도 덕분에 구원받은 우리는 더 이상 이 시대에 살지 않으며 이미 다가올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삶의 형태가 아니라 다가올 시대의 삶의 형태를 따라야 한다. 이러한 삶의 새 형태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성령에 의해 생각과 의지가 새로워짐으로써 새로운 삶의 형태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이다(2코린 3,18 참조). 

 

생각을 바꾸라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습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명령은 변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 성령 안에서 새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다(창세 1,26).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또 바뀌어 가야 한다. 이 변모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은 창조된 우리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자,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실이며, 부활 때 충만하게 누릴 구원 은총을 미리 맛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은 이렇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엮는다. 우리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고(과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현재), 다가올 시대에 이 변화가 완성될 터다(미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헛된 소망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자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명령이며 꼭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주님의 변모 사건이 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 송혜경(비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송혜경 박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와 고대 근동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우스의 작품 ‘시편 6편에 관한 강론’의 콥트어 비평본을 만들고 번역 주석하여 고대근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 ‘신약 외경 상권: 복음서’로 가톨릭신문사가 주최하는 제14회 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6일, 송혜경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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