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반장 월례연수] 구약 성경 인물 ⑤ 아모스 예언자 아모스 :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 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예언자의 이름, 아모스 그의 이름, ‘아모스’의 어원은 ‘들어 올리다’ 또는 ‘나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아마스’로 ‘무거운 짐 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아모스야’의 단축형으로 ‘주님께서 짊어지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함께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짐을 나누어지듯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부르심과 응답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분열되어 있었는데, 그는 남유다 왕국의 작은 촌락 ‘트코아’ 출신이었습니다.(아모 1,1) 또한 그는 스스로를 목양업자이며 농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7,14) 결국 그는 출신과 직업으로 보아 사제 집안처럼 정통성이 있는 예언자의 혈통이 아니라, 그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7,15) 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신의 생업과 가족들, 모든 것을 버리고 모험과 같은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인간적인 걱정과 두려움은 모두 떨쳐 버리고 떠난 그의 굳은 믿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 그리고 순종의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경 속 인물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는, 아니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일을 성모님은 하느님께 순종하며 고백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덕은 굳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또한 어떠한 인간적인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자신의 설교를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저술 예언자입니다. 남유다 출신이었던 그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고향을 떠나 멀리 북이스라엘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보기 드문 번영을 일구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종교의 세속화(형식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부자들의 착취, 나아가 사회 전반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모스는 이 모든 불의를 고발하며 회개를 촉구했기 때문에, ‘정의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언의 내용 9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아모스서에 드러나는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회 정의 실현 정치 지도자들과 부자들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가난한 이들을 착취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를 저버리고 재화에 대한 탐욕을 채우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부정과 불의에 대한 고발과 심판을 예고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예전처럼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하느님 사랑의 응답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② 윤리 · 도덕적 회복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지만, 도덕적으로는 가장 타락한 사회였던 북이스라엘은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윤리적인 회개의 삶으로 초대 받습니다. ③ 참된 경신례의 회복(성소의 정화) 북이스라엘은 화려한 외적 예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의미하는 경신례를 회복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바로잡고, 축복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④ 하느님의 징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서 종교 · 사회 ·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주님의 날’을 선포하십니다. 이날은 백성들이 기대하던 축복의 날이 아니라,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모스 예언자에게 다섯 가지 환시(메뚜기 떼, 타오르는 불, 다림줄, 여름 과일 한 바구니, 지진으로 인한 성전 붕괴)를 통해 징벌을 선포하십니다. ⑤ 새로운 희망에 대한 선포 비록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심판의 날을 선포하시지만, 그 징벌의 의미는 단순히 단죄가 아니라,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멸망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아모스의 고발과 예언을 통해서 당신 백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다시금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끝까지 기다리며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니 그들은 내가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으리라.”(9,15) 오늘날을 향한 메시지 ① 한국 사회의 현실 아모스 예언자 시대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라고 대표되는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하는 데에 집중하며, 이기적인 생각 아래 자신의 자유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로 물들어가고, 이는 세속화 현상을 가속시킵니다. 이에 따라 하느님 존재와 종교에 대해 부정하거나 무관심한 사회적 경향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교회 역시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러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② 예언직 수행 예언자는 ‘하느님께로부터 불리움 받아 파견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예언자의 모든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믿음 · 순종 · 겸손 · 용기의 덕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해야만 합니다. 우리도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일꾼으로 불리움 받았으므로,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전하고 선포하는 예언직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③ 봉사직 수행 결국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봉사자로 불리움 받았습니다. 돈보다 사랑과 친교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언직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참된 봉사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길잡이,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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