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멜레크, 말아크
어린 생명 구해주신 주님의 천사들 소화 데레사 대축일을 맞는다. 짧은 생애였지만, 하늘과 땅의 참된 임금이신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셨다. 오늘은 성녀를 기리며 임금(멜레크)과 사자(말아크)라는 말을 묵상해 보자. - 말라크. ‘다스리다’를 의미하는 동사다. 동사어근을 표시할 때는 대문자로 쓰고, 관습적으로 ‘아’(a)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이 동사어근은 ‘말라크’로 읽는다. 다스리는 임금 히브리어로 임금은 멜레크라고 하는데, ‘다스리다’를 뜻하는 ‘말라크’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멜레크와 말라크는 모음만 다를 뿐 자음이 같다. 히브리어는 자음을 크게 쓰고 위아래에 모음 부호를 작게 찍는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하려면 이런 모음 부호가 지닌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멜레크는 본디 이스라엘의 고유한 제도가 아니었다. 세상의 다른 민족들이 모두 임금을 세웠을 때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멜레크가(임금이) 말라크하기(다스리기) 전에, 에돔 땅을 말라크하던(다스리던) 멜레크들은(임금들은) 이러하다”(창세 36,31)는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백성은 임금을 요구했고, 하느님은 경고하셨다. 하느님은 사무엘을 시켜 “이것이 여러분을 말라크할(다스릴) 멜레크의(임금의) 권한이오”(1사무 8,11)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를 지적하셨다. 하지만 백성이 거듭 요구하자 결국 자비의 하느님은 백성의 청을 들어주셨다. 갈등과 논란 끝에 도입된 왕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멜레크는 무척 자주 쓰여서, 현재 구약성경에 2500번 이상이나 등장하는 기초단어가 되었다. - 멜레크. 말라크라는 동사어근에서 유래한 명사로 ‘임금’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2,500번 이상 등장하는 기초단어다. 카프(k) 안에 찍은 두 점(하늘색)은 음가가 없으므로 음역하지 않는다. 이렇게 멜레크는 본디 외래어이자 지상의 세속적 임금을 의미했다. 하지만 훗날 예언자들은 ‘최고의 임금은 하느님뿐이시다’는 찬미와 고백을 토해내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멜레크이신(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5)라고 외쳤고, 즈카르야도 “멜레크이신(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즈카 14,16-17)이라고 거듭 노래하였다. 시편에는 하느님이야말로 “영광의 멜레크(임금)”(시편 24,8.10; 98,6)라는 찬미가 나온다. 전달자 한편 다른 사람의 소식을 전하는 사자(使者)를 히브리어로 ‘말아크’라고 한다. 멜레크와 말라크, 말아크는 소리가 비슷하여 헷갈리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말아크는 여러 가지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저 평범하게 “말아크(사람을) 보내어”(에제 23,40)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말아크는 소식을 전하는 특수한 직책, 곧 ‘전령’으로 옮기기도 한다. 다윗이 밧 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라고 명령하자, 다윗의 충복 요압 장군은 그대로 하였다. 요압은 말아크(전령)에게 패전의 정황을 전하면서 “임금님의 부하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2사무 11,24)라고 고하게 하였다. 말아크(전령)의 말을 들은 다윗은 전쟁에서 패한 요압을 격려하였다. 말아크(전령)는 전장의 장군과 궁전의 임금의 사악한 마음을 연결해 주었던 것이다. - 말아크. 사자 또는 전령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님의 전령은 ‘천사’로 옮긴다. 후대에는 주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인간에도 이 말을 썼다. 윗첨자 e(회색)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자 하느님의 말아크는 ‘천사’로 옮긴다. 일찍이 ‘주님의 말아크(천사)’는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임신한 하가르가 사라이의 구박을 피해 달아났을 때, 불쌍한 하가르와 태중의 아기를 살려주고 위로하고 하느님의 복을 전해준 것은 “주님의 말아크(천사)”였다.(창세 16,7-15) 한편 사라이의 아기 이사악을 지켜준 것도 주님의 말아크(천사)였다. 아브라함이 주님의 명에 따라 이사악을 바치려고 하였을 때,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는 말씀을 전해준 것이 바로 주님의 말아크(천사)였으니(창세 22,10-12), 주님의 말아크(천사)는 두 아들의 생명을 모두 지켜준 셈이다. 주님의 말아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모세가 떨기나무의 하느님을 만날 때, 그가 처음 본 것은 주님의 말아크(천사)였다.(탈출 3,2) 시편에는 하느님께서 ‘바람을 당신 사자로 삼으셨다’(시편 104,4)는 표현이 나오는데, 성령과 매우 가까운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후대에는 주님의 말아크를 인간에게도 적용했다. 하까이 예언자는 “주님의 말아크(사자) 하까이는 주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였다”(하까 1,13)고 말하였다. 한편 말라키 예언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제야말로 “만군의 주님의 말아크(사자)”(말라 2,7)라고 고백했다. 참된 멜레크이신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신 주님의 말아크 덕분에 우리 인간의 영적 삶은 무척 풍요로워진다. 주님 곁에 계실 성녀께 겸손되이 전구를 청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0월 1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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