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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 여행74: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로마 1,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8 조회수5,448 추천수0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4)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로마 1,1)


복음 선포하며 따르는 ‘주님의 종’

 

 

세상의 중심 ‘로마’에 전하는 편지

바오로 사도의 친서 중에서 마지막으로 볼 편지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로마서)입니다. 로마는 바오로 사도가 가서 복음을 선포했던 적이 없는 도시였기에 그의 복음 선포로 세워진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로마가 누구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이 있었고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16장의 마지막 인사 부분에 상당히 길게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안부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로마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로마는 제국의 수도였고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되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로마서에 보면 바오로 사도는 로마를 방문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기를 열망했습니다. 로마서는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원의를 담아 자신이 로마에 가기 전에 미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소개하는 성격의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오로 사도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치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아카이아 지방에 석 달 정도 머문 것으로 표현되는데 많은 사람은 이때 머문 장소가 코린토라고 생각합니다. 시기는 56년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의 마지막 편지라는 것에 걸맞게 그의 신학이 가장 잘 요약되어 있는 서간입니다. 하지만 서간의 형태에 있어서 조금 생각해 볼 면도 있습니다. 로마서 15장의 마지막 절은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아멘”이라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마치 편지의 마지막처럼 보이는 이 구절 때문에 일부의 사람들은 16장 전체가 바오로 사도가 쓴 원래의 편지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16장 역시 바오로 사도의 서간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로마서에서 다른 서간과 비교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지의 서문입니다.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바오로 사도의 원의를 제외하더라도(로마 1,8-15) 서간의 시작은 상당히 확장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바오로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가 표현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사도로 선택받은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은 바오로 사도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종’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신앙의 선조들이나 예언자들 역시 ‘종’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바탕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신을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오로 사도 역시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복음을 충실히 따르는 종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사도로 부르심 받은’것은 바오로 사도의 직무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로마 1,5)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하고 또 그것이 예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강조했던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사도 직무에 대해 요약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주어진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선택받았다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택은 원래 ‘떼어 놓은’ ‘선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이 표현은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나 레위인들에게 맡겨진 하느님께 봉사하는 직무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에게 사용됩니다.

로마서의 시작은 이처럼 짧은 표현이지만 바오로 사도의 정체성을 요약해서 전합니다. 그는 가장 먼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직무를 이해하고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19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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