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야차르, 요체르, 예체르
창조주, 사랑으로 인간 형상 빚어내신 분 교회력으로 새해가 밝았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이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요체르),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라고 노래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를 빚으신 창조주를 묵상해 보자. - 야차르. 본디 ‘(진흙으로) 빚다’를 의미했지만, 다양한 맥락에서 ‘만들다’를 뜻하게 되었다. 옹기장이 야차르는 도공이 ‘(진흙으로) 빚다’는 뜻의 동사다. 우상을 빚거나(이사 44,9) 망치로 두드려 만들거나(이사 44,12), 재앙을 빚는 것도(시편 94,20) 모두 야차르라고 했다. 야차르의 능동분사형인 요체르는 ‘빚는 자’라는 뜻이다. 진흙으로 빚는 사람이므로, 우리말로 ‘옹기장이’로 옮긴다. 진흙을 다루는 사람은 고대근동 세계에서 고급 기술자로 통했다. 진흙은 벽돌과 점토판과 도자기의 재료였다. 벽돌을 다루는 사람은 건축가로서, 신전과 왕궁을 지었다. 점토판을 다루는 사람은 서기로서 인류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이 둘 보다 더 오래된 직업이 옹기장이였다. 옹기장이가 생산하던 그릇은 당대의 첨단 생산품이자, 아름다운 그림과 문양을 담은 예술품이었다. 그래서 옹기장이는 본디 사회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질 좋은 진흙은 귀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길가메쉬 이야기를 보면, 진흙 채굴권을 두고 도시국가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는 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신다. 이때 하느님이 사용하신 방법은 매우 전통적이고도 훌륭한 것이었다. 진흙으로 만드신 방법만 깊이 생각해 봐도, 인간은 하느님의 평범한 피조물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걸작품임을 알 수 있다. - 요체르. 야차르의 능동분사형으로 ‘(진흙으로) 빚는 자’의 뜻이었는데 예레미야와 이사야 예언자를 거치며 ‘창조주’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 낱말을 문맥에 따라 ‘옹기장이’로도 옮기고 ‘창조주’로도 옮기는 현상에서 히브리어의 소박하고 중층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옹기장이 아버지 하느님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을 옹기장이로, 인간을 그분 손의 진흙 작품으로 비유한 곳이 있다. 특히 예레미야 예언자와 이사야 예언자가 큰 역할을 했다. 예레미야서 18장과 19장에는 옹기장이와 옹기그릇(또는 질그릇)의 비유가 나온다. 옹기장이(요체르)는 열심히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금 만든 그릇을 뭉개버려 다시 진흙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새롭게 그릇을 만든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옹기장이(요체르) 같은 분이요 우리는 그분 손에 있는 진흙과 같은 존재라며, 백성들에게 회개와 겸손을 촉구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예레 18,2-6) 훗날 사도 바오로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를 설명했다.(로마 9,21) 한편 이사야 예언자는 요체르를 ‘우리 아버지’로 고백하였다. 바로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이다. 이사야는 옹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 같은 우리들이지만, 그런 옹기장이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는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럼으로써, 요체르는 단순한 기능공이 아니라 ‘사랑의 창조주’라는 의미도 얻게 되었다. 요체르를 ‘옹기장이’로도 옮기지만 ‘창조주’로도 옮기는 이유다. - 예체르.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의 의미로서 원래는 ‘(만들어진) 형상’을 의미했지만, ‘(만들어진) 마음’으로 훨씬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분이 만드신 몸과 마음 예체르는 본디 요체르가 ‘(진흙으로) 빚은 것’이란 의미이다.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빚으셨고(시편 33,15) 사람 안에 얼을 빚어 넣으셨다는(즈카 12,1)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의 창조는 전인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체르는 주님께서 ‘(빚으신) 형상’ 뿐 아니라 ‘(빚으신) 마음’도 뜻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가톨릭 성경은 예체르를 ‘생각’, ‘뜻’, ‘심성’ 등으로 옮긴다. 한국교회의 옹기 ‘옹기’와 ‘옹기장이’는 한국 교회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옹기장이(요체르)는 한국 천주교가 빚어지던 시대, 곧 박해시대에 천주교인의 대표적인 직업으로서, 신앙인들의 심성(예체르)에 뿌리내렸다. 하지만 고대 근동 세계와는 달리, 우리의 옹기장이는 ‘낮은 직업’이었다. 교회는 가난한 옹기장이(요체르)의 후손이었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의 호가 옹기인 것도 단지 우연만은 아니리라.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3일, 주원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