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43) 예수님과 베엘제불 그리고 참행복(루카 11,14-28)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 참된 신자 되려면 말씀 잘 듣고 실천해야 - 율리우스 슈노어 폰 파롤스펠트 작 ‘마귀 들린 자들과 마주친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이 시빗거리가 되고 이는 하느님 나라와 참 행복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루카가 전하는 이 이야기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과 베엘제불(11,14-22)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벙어리가 말을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워합니다. 그러면서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11,12-16)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 모아집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듯이, 사탄도 서로 갈라지면 그 나라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너희들의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너희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느냐? 그러니 너희들의 비난은 터무니없는 것이다.’(11,18-19)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11,2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구약에서 모세가 일으키는 여러 기적이 하느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파라오의 요술사들이 인정함을 나타내는 탈출기 8장 15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표현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전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느님 능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실 뿐 아니라 ‘새로운 모세’이심을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다. 더 주목할 것은 그다음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11,20)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는 당신의 활동이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 이들에게 답변을 하신 셈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11,21-22)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힘센 자’를 사탄의 세력으로, ‘더 힘센 자’를 예수님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사탄의 지배에 예속돼 있던 이들을 예수님께서 사탄을 쫓아내고 자유롭게 해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 말 못 하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11,23)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좀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세력 곧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그리스도 신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서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모아들인다”는 표현은 목자가 양들을 모아들이는 행위, 또는 추수의 일꾼들이 수확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우리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 우리에 모이는 양이고,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수확하는 추수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 신자가 된 우리가 예수님과 한 편에 서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 말씀이 이 물음에 답변이 될 것입니다. 되돌아오는 악령(11,24-26) ‘더러운 영 곧 악령이 사람에게서 나가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 찾지 못하면 다시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 집이 깨끗하게 청소된 것을 보면 다시 나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러면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 대목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 대목과 연결시켜 봅시다. 우리는 죄의 세력, 곧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지배에서 풀려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했던 더러운 영이 쫓겨나 쉴 데를 찾아 돌아다닐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예수님의 사람이 된 우리가 예수님과 한 편이 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달리 말해서 회심을 했지만 완전하게 옛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그러면 악령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일곱’은 충만함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더욱 강력하게 그 사람을 죄의 세력에 사로잡히도록 한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처지는 당연히 처음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되돌아오는 악령’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그리스도 신자가 된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함께 살아가지 않을 때 더 나쁜 상태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참행복(11,27-28)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목청을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8)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낳고 기르신 어머니 마리아가 행복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달리 보면, 예수님을 모시는 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는 행복하다는 말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그리스도 신자라고 내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 신자답게 하느님 말씀을 듣고 새기며 실천해야 참된 그리스도 신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참으로 행복하려면 그저 신자임을 내세우기만 하지 말고 신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잘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이 시빗거리가 되고 이는 하느님 나라와 참 행복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루카가 전하는 이 이야기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17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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