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함께 떠나는 신약 여행] (79)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구원 역사 위에 세워진 교회 안에 모두 한 가족 - 소아시아 지방의 도시 에페소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특히 이방인 선교의 거점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진은 에페소 유적. 가톨릭평화신문 DB. 이방인 선교의 거점 에페소 에페소는 소아시아 지방의 도시로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던 에페소는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에서 거점 역할을 했던 장소였습니다. 교부들의 견해에 따르면 에페소는 요한 복음이 저술된 장소로 생각되었을 만큼 교회의 전통을 많이 지닌 도시입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에페소서) 역시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의 차명 서간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기록된 시기는 80년에서 90년 사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에페소서는 잘 요약된 신학 서적과도 같은 서간입니다. 바오로의 친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으로 복음 선포와 믿음을 강조한다면, 차명 서간들은 이미 설립된 공동체, 곧 교회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특별히 에페소서는 교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다인 출신과 이방인 출신의 신앙인들 관계에 대해 다룹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에페 2,12) 이방인 출신들을 향한 이 표현은 당시 교회가 처한 상황을 말해 줍니다. 복음 선포와 함께 교회 구성원들은 유다인 출신에서 이방인 출신으로 변해 갑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와 함께 이방인들 역시 하느님의 구원에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교 안에서 시작되었던 교회의 기원은 점차 희미해지고 이방인들의 구원이 하느님의 진정한 목표처럼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유다 전쟁(66~73년)의 여파로 70년에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욱 강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페소서는 이방인 출신의 신앙인들에게 교회의 기원을 기억하도록 요청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유다인과 이방인 구분 없어져 이와 함께 에페소서는 예수님 안에서 더 이상 과거의 구분이, 더 이상 유다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서로 반목하던 두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평화의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에페 2,17)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원을 위한 것이면서 당신 몸인 교회 안에 서로 다른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에페소서는 십자가 죽음이 ‘평화의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것은 역시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구체적으로 바오로 사도가 생각했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모든 이들이 지체를 이루는 몸을 표현합니다.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2-23) 에페소서에서 표현되는 평화를 가져오는 십자가 사건은 교회 구성원들의 일치라는 중요한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교회에는 더 이상 민족의 구분이 없습니다. 에페소서는 이방인 출신의 신앙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외국인이거나 이방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기초는 구약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0-21) 하느님의 성전, 교회 교회는 하느님의 계획을 통해 역사 안에서 준비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고 모든 이들을 하나의 몸으로 만드신 예수님의 구원 업적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구원을 위한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평화가 실현되는 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 자체로 구원을 살아가는 공동체이고 하느님의 성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25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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