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 – 아담 성경의 순서에 따라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성경도 읽고 그들의 모습에 비친 우리네 모습을 살펴보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을 펼치며 처음 만나는 사람은 아담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세상의 창조에 사람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2장-3장에는 에덴동산 이야기와 함께 ‘사람’의 창조와 ‘여자’의 창조, 범죄, 쫓겨나기까지 최초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로 잠시 뒤로 물러났던 아담은 셋의 탄생과 그 뒤에 이어지는 족보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930년을 살았다는 최초의 인간, 누군가의 배를 빌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배꼽 없는 인간’이라고도 불리는 아담, 그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람의 창조와 관련해서 창세기 1장과 2장은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장엄한 인간 창조 이야기(1,26-28)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며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는 데 반해 2장은 ‘흙먼지로 빚어졌다.’고 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느님 없이는 인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의 첫 머리부터 다양한 시선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사람의 창조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땅은 생명체들의 근간으로 그려집니다. 아직 세상에 어떤 생명도 없을 때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적시고 하느님은 흙먼지를 모아 사람을 빚어내십니다(2,6-7). 땅에서 온갖 나무들이 자라나고(2,9), 동물들도 그 흙으로 만들어집니다(2,19). ‘아담’이라는 첫 사람의 이름도 ‘흙’(히브리 말로 ‘아다마’)이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흙에서 나온 인간은 흙을 일구고, 생을 마치면 자신이 나온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땅에서 나온 모든 것이 생명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존재, 숨을 쉬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생명이 불어넣어져야 합니다. 창세 2,7은 흙먼지로 빚어진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생명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고대의 다른 민족들도 사람이 ‘진흙과 신적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바빌론인들은 진흙과 신의 피로 사람이 만들어졌다고 하고, 이집트인들은 신의 영혼이 인간 안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꽃을 사람 안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의 숨이 인간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간 안에 숨겨진 초월성 또는 신적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보다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생명, 생명의 숨결이 없으면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이 이 ‘하느님의 숨’에 담긴 의미일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사람이 사람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흙에서 나온 몸과 하느님의 숨을 들어서 인간이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풀이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이 영혼과 육신으로 갈라진다는 것은 너무 나아간 해석입니다.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는 말에서 확인되듯이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 곧 하느님의 숨과 육신이 통일되어 하나를 이루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체로만이 아니라, 영으로도 하느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한편, 고대의 신화들은 사람의 창조에 관해 신들의 필요(신들을 섬기는 종으로 삼기 위해)에 의해, 또는 신들의 갈등에서 사람이 나왔다(신들 간의 싸움에서 이긴 신이 죽은 신의 몸에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께서 창조의 결정체(창세 1장)로, 창조의 협력자(2장)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창세 1,26-28은 인간의 창조가, 신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요 신들 간의 갈등에 의한 것도 아닌, 하느님의 자유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2장의 에덴동산 이야기는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관심과 사랑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은 여자의 창조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 여자의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아주 오래된 물음입니다. 동서양의 철학자들, 수많은 과학자, 사상가, 현인들이 그 답을 찾아왔습니다. 더러는 종교가 생겨난 이유로 들기도 합니다. 현대의 과학은 ‘진화론’을 말하고 학교에서도 이를 가르칩니다. 일부 근본주의(성경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 빠진 이들은 ‘창조과학’이란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창조론’이 아닌 ‘창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질문! ‘성경이 과연 창조론을 뒷받침하고자 써졌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작성될 당시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언어로 세상과 사람의 기원에 대해 말합니다. 성경을 쓴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자 한 말은 세상과 사람의 기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없이는 세상이든 사람이든 존재할 수도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사람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느냐(창세 1장), 진흙으로 빚어졌느냐(창세 2장)?’는 질문도 이해됩니다. 서로 부딪히는 이 이야기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존재,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숨으로 살아가는 존재, 곧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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