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5)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4)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다 - 대사제의 가장 큰 역할은 백성 전체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림은 루랑드 라 이르 작,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부분, 캔버스 유화, 1650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출처=가톨릭굿뉴스.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강조와 함께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왔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른 서간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에는 이 사실을 말하면서도 독창적인 내용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구원의 영도자’로 표현합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히브 2,10)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명과 불신, 갈림길 여기서 표현되는 영도자, 지도자의 모습은 편지 안에서 모세와 비교됩니다. 모세의 가장 큰 업적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는 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냈지만,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그와 다르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보여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은 탈출기와 민수기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지 못합니다.(시편 95,7-11)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명과 불신은 안식처를 향한 갈림길로 표현됩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의 역사를 말하면서 ‘대사제’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갑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된 새로운 정체성은 ‘사제적인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경신 공동체로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사제적인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대)사제입니다. 대사제의 가장 큰 역할은 백성 전체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속죄의 날’로 표현되는 이 날에는 대사제가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속죄 제물을 봉헌합니다. 이런 대사제의 역할은 하느님과 백성을 화해시키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제사를 봉헌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다인들은 이 속죄의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사제는 이처럼 백성을 위한 제물을 바치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대사제이십니다.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히브 8,1-2) 예수님 역시 대사제처럼 백성을 위해 제물을 바치는 분이시지만 그분이 바친 제물은 다른 대사제들과는 다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은 히브리서에서 중복된 의미로 표현됩니다. 제물을 바치는 대사제이자, 대사제에 의해 바쳐진 제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히브 9,28) 대사제 중의 대사제, 예수님 대사제는 매해, 반복해서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제사는 유일한, 반복되지 않는, 결정적인 희생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대사제처럼 우리를 위해 제사를 바친 분이십니다. 또 그분은 희생 제사의 다른 동물, 곧 황소나 염소의 피가 아닌,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죄를 씻고 용서받았습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대사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맺어진 계약은 새로운 계약입니다. 그리고 이 새 계약은 옛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듭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탈출과 가나안 정착까지의 여정, 또 그 안에서 보여주었던 선조들의 불순종.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되고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지난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끌어 냅니다. 낡은 것과의 대조를 통해 새것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새 계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2월 4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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