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50) 회개하지 않으면…(루카 13,1-9)
비유에 담긴 살벌한 경고 ‘늦기 전에 회개하라’ - 실로암 못 탑의 붕괴 이야기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에 관한 말씀은 더 늦기 전에 회개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못. 출처=가톨릭굿뉴스. ‘불을 지르러 왔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왜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늦기 전에 화해하라.’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신(12,49-59)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회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십니다. 빌라도의 만행과 실로암 탑의 붕괴 이야기(13,1-5) 그리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비유 말씀(13,6-9)을 통해서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13,1-5) 두 가지 사건이 거론됩니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13,1)과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깔려 죽은 일(13,4)입니다. 우선 루카 복음사가는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알린 것으로 전합니다. 빌라도는 유다 총독 재임(A.D.26~36) 초기인 26년 예루살렘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을 전시했는데, 이를 치워 달라며 카이사리아에 있던 자신을 찾아온 예루살렘 주민들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또 임기 말년인 36년에는 그리짐산으로 가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산기슭에서 살해했다고 합니다. 그리짐산은 사마리아인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산이지요. 그런데 루카복음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그가 제물을 바치려던 갈릴래야 사람들을 죽인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무조건 거짓이라고 배격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에 비해 로마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실제로 저항도 많이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빌라도는 총독 재임 시절 여러 차례 예루살렘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유다인들이 피를 흘리게 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해석 혹은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13,2-3)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사람들은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죄가 많기 때문으로 여긴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욥기 등을 보면(욥 4,7; 8,4.20; 22,5; 탈출 20,5 참조) 범죄와 벌이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의 본뜻은 죽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회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그치지 않고 당신이 직접 또 사례를 더 드십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져 열여덟 명이 깔려 죽은 사건입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시내 동남부에 있는 못입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도읍으로 삼은 예루살렘에는 원래 동쪽 성 밖에 기혼샘이라는 못 하나가 있었습니다. 히즈키아가 유다 왕으로 있었을 때(기원전 717~687?) 앗시리아가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하자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 수로를 만들어 성벽 안으로 흐르게 해 못을 만들었는데, 이 못이 실로암입니다. 실로암은 말하자면 외세의 침공에 대비해 만든 물 저장고인 셈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신 곳으로 나오지요.(요한 9,1-12 참조) 실로암 부근에는 감시용 또는 방어용의 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탑이 무너져 열여덟 명이나 깔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탑의 붕괴 사건을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탑이 무너져 열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깔려 죽었듯이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13,5)이라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13,6-9) 비유 말씀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았는데 해마다 찾아가도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3년째 와서 봐도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잘라버리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이렇게 간청한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버리십시오.”’ 이 비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단어를 뽑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포도 재배인, 숫자 3, 잘라버리기 등입니다. 성경학자들의 해석을 참고로 하여 이런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면,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을,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회개하지 않은 세대를 가리킵니다. 3은 성경에서 충만함,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이지요. 이제 이 비유의 뜻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말하자면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3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말해 기다릴 만큼 충분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회개하지 못하니까 잘라버리라고, 곧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청하십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때에 잘라 버리십시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은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라는 것,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 이때를 놓치면 바로 멸망의 구렁텅이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라는 거듭된 호소이자 경고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응분의 대가를 치른 거야’라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사건이나 실로암의 탑이 무너져 열여덟 명이나 죽은 사건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해석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와 상관없다는 식의 해석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사건을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우리 삶을 똑바로 하는 회개의 계기로 삼는 자세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13,5)이라는 말씀을 새깁시다. 2.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비유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군중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포도밭의 무화과나무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여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로서 맞갖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가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려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우리를 아끼고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고 있지요. 이를 끝내 외면하시겠습니까.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2월 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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