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주석성경의 공관복음서 입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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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세기 | 작성일2011-04-28 | 조회수432 | 추천수4 | 신고 |
출처 : 주교회의 주석성경의 신약부분 24 ~ 25페이지
여기에서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복음서들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복음서 안에 흩어져 있는 많은 표지를 바탕으로 복음서 전통들을 거슬러 올라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나자렛 예수님의 역사적 삶과 행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둘째,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 땅에서는 아람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복음서들은 그리스 말로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테면 ''번역문''을 통해서만 예수님께서 하신 언행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이 ''번역문''은 고대 전통들과 복음서 저자들의 편집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다. 본디 아람 말로 이루어진 것들을 그리스 말로 옮겨 적은 것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전승 현상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진 면일 따름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모국어로 말씀하셨음 직한 것들을 다시 구성해 볼 수도 있다. 또 그분께서 어떠한 비유를 드시거나 어떠한 병을 고쳐 주신 정확한 상황을 다시 구성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세부 사항에 들어가면 크든 작든 개연성을 띨 수 밖에 없다. 역사적 확증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 한계는 복음서들의 성격 자체에서 나온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조명을 받는다. 그리고 이 신앙은 중립적으로 진술될 수 없다. 생생한 증언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증언에는 증인이나 이야기하는 이들 자신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들이 여기저기에서 되풀이하고 조정하고 손을 댄 것들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들의 기능과 그 효력은 여전히 독자들을 신앙으로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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