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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사라와 하가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6 조회수5,420 추천수0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사라와 하가르

 

 

창세기12-50장(성조사 聖祖史)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남성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인들 – 사라, 하가르, 레베카, 레아와 라헬, 타마르 등 주연 남성들의 배우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들도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축복 안에서 사는 이들이며 이스라엘 역사를 구성합니다. 이번엔 그중에서 아브라함의 두 아내, 사라와 하가르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안주인입니다. 그의 이름(창세 17,15)도 아브라함처럼 ‘사라이’에서 ‘사라’로 바뀌는데 둘 다 ‘왕비, 여왕’이란 뜻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배다른 누이로 소개되는데(20,12), 이는 고대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사라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여러 위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이집트(12,10-20)와 아비멜렉의 궁전(20,1-18)에서의 일화는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잃을 위기까지 몰아갔습니다. 무책임한 남편을 대신해 그를 지켜준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2,7; 20,3.6-7).

 

하지만 사라가 겪은 가장 큰 고통은 여인으로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상속자 후보 1위였던 조카 롯은 떠나가고, 종 엘리에제르는 하느님으로부터 거부됩니다. 이제 집안을 이어갈 자손을 얻어야 하는데, 사라이는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종 하가르에게 남편과 잠자리를 갖게 해서 아들을 얻고자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이렇게 낳은 아들을 안주인의 아들로 올려 집안을 이어가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분명 여인으로서, 한 사람의 아내로서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가르는 임신을 하자 주인을 업신여깁니다(16,4). 사라이는 주인으로서의 권리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항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라이는 이 갈등, 불임인 자신과 임신한 여종의 갈등 앞에서 의지할 데가 없었나 봅니다. 책임지지 않는 남편 앞에서 그는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셨으면!”(16,5) 그렇게 주님을 찾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권리,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가르는 이집트 여인(16,1)으로 소개됩니다. 같은 여인이지만, 그는 종의 신분입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배우자를 얻지 못하고 안주인의 뜻에 따라 집주인의 첩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안주인과의 갈등 때문에 임신한 몸으로 광야로 달아나야 했습니다(16,6). 하느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본래 이민족이었지만, 하느님을 체험한 후 고백합니다. “당신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16,13) 그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고백하는 이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15,4)라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을 찾아오십니다(18,1-15). ‘내년 이때에는 아들이 있을 것’(18,10.14)이라는 말씀 앞에서 사라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짓습니다(18,12). 이미 나이 든 노인(18,11)으로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만이 아니라, 그렇기에 더욱 서글픈 현실 앞에서 나온 웃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실현하십니다. 그래서 사라는 아들 이사악을 낳고 슬픔의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21,1-17).

 

하지만 아직 갈등은 남아 있습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정당한 상속자가 될 것인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이스마엘과 이제 막 젖을 뗀 이사악(아브라함은 86살에 이스마엘(16,16)을, 100살에 이사악(21,5)을 얻었다.), 그 둘의 관계를 바라보던 사라는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바로 하가르와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로써 자신의 아들 이사악만이 상속자로 남게 합니다.

 

결국 하가르는 아들과 함께 광야로 내쳐집니다(21,14). ‘빵과 물 한 가죽 부대’, 그것이 주어진 전부였습니다. 물이 떨어지고 아이는 죽어갑니다. 아무런 힘도 없던 하가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멀리 떨어져 앉아 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우물을 찾게 해주십니다(21,19). 절망의 상황, 죽음만이 지배할 것 같은 광야 한가운데서 하느님과의 만남은 하가르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누구의 종, 누구의 첩, 핍박받고 내쳐지는 이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21,18)과 도움으로 살아가는 자유인입니다.

 

사라와 하가르, 그들을 대변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하가르가 임신의 기쁨을 누릴 때 사라는 울부짖었습니다. 반대로 사라가 웃고 있을 때 하가르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이 눈물의 때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집이든 광야든 어디서든, 기쁨과 슬픔, 행복과 좌절, 어느 순간이든 하느님은 당신을 찾는 이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은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소리를 듣고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여인들의 갈등은 후대에도 이어집니다.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이 그 당사자들입니다. 자매이지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이들은 자녀 출산을 빌미로 경쟁합니다. 빌하와 질파라는 두 여종까지 끌어들입니다. 르우벤부터 벤야민까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들이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경쟁,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픔까지 겪는 그들에게 개입해 자녀를 얻게 해주시고, 위로와 기쁨을 선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여인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전하는 이는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아픔을 겪는 이들이 의지하고 찾을 분은 오로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울음과 아픔을 웃음과 기쁨으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다.

 

[2018년 3월 2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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