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92)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7)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라 - 요한 서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 중 한 사람이 ‘복음 :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적힌 하트 모양의 표지판을 흔들고 있는 모습. [CNS 자료사진] 요한 서간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권고합니다.(마르 12,29-31 참조) 하지만 사랑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공동체가 처했던 아픈 현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한 서간이 기록된 시기에 공동체는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흔적들을 요한 서간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저자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적(들)”로 표현합니다.(1요한 2,18; 4,3) 또한 그들을 “속이는 자들”로 소개하고(1요한 2,26) “거짓 예언자들”이라고 말합니다.(1요한 4,1) 요한의 공동체의 적들로 표현되는 이들은 원래는 공동체에 참여했던 이들로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1요한 2,19) 잘못된 가르침, 공동체 내부 갈등 부추겨 이들이 주장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거짓된 내용은 예수님의 육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2요한 7)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요한의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지게 했고 내부의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 적대자들은 당연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 이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마도 ‘영지’라고 부르는 사조와 관련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영지’(Gnosis)는 말 그대로 ‘앎’을 추구하던, 그들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내용을 아는 것을 통해, 이 세상과 하느님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온 표현입니다. ‘영지 사상’의 내용은 이 세상이 처음부터 악하게 창조되었고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 역시 온전한 신이 아니며 예수님은 실제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죽음 역시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그릇된 가르침은 요한의 공동체뿐 아니라 초기 교회에도 영향을 주었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단죄를 받았습니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은 요한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신앙인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 요한 서간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요한 서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권고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공동체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죄에 빠지지 않고 신앙을 지켜 구원받도록 이끌어갑니다. 형제적인 사랑의 실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함께 형제에 대한 사랑은 믿음의 모습이자 윤리적인 자세로 표현됩니다. 형제적인 사랑의 실천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당연한 것처럼 표현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믿음은 이제 하느님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요한 서간에 따르면 믿는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에서 태어난 이들이고,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믿음과 같은 말처럼 들립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이것은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신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 이들이고 하느님의 사랑은 형제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안에 완성됩니다. 요한 서간이 강조하는 사랑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신앙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으로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의 상황에서 신앙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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