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96)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묵시 4,1)
하느님 어좌 옆 네 생물(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 )은 네 복음서를 상징 -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책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 마태오 복음사가, 그 아래에 고개를 쳐들고 있는 황소가 루카 복음사가를 상징하며, 예수님의 왼쪽에 있는 검은 독수리가 요한 복음사가를, 그 아래 날개를 단 사자가 마르코 복음사가를 의미한다. 그림은 안드레아스 카란디노스 작 '성체성사의 상징', 1709년. 요한 묵시록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짧은 편지 형식으로 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묵시 2―3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긴 환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주요 환시들입니다.(묵시 4,1―22,5) 요한 묵시록의 4장부터는 서로 이어져 있는 환시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어좌에 앉은 분’과 ‘어린양’에 대한 환시가 있습니다. 하늘로 들어 올려진 저자는 가장 먼저 어좌에 앉은 분을 봅니다. 환한 빛과 함께 묘사되는 어좌에 앉은 분은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이 외치는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4,8) 하늘의 어좌에 앉아 계신, 상징적으로 하늘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시는 이분은 하느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느님 곁에는 스물네 원로가 있었다고 표현됩니다. 스물네 원로에 대한 표상은 요한 묵시록에서만 찾을 수 있기에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우선 요한 묵시록 안에서 이 스물네 원로의 역할을 보면 하느님 곁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봉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열두 번에 걸쳐 표현되는 스물네 원로의 역할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제들과 성가대를 나타내는 숫자에서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스물네 개의 조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1역대 24―25장) 스물네 원로가 줄곧 하느님의 곁에서 봉사하고 그분의 업적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이런 의견이 가장 설득력을 얻습니다. 아마도 스물네 원로의 정체는 천사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항상 주위에 천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1열왕 22,19; 욥 1,6; 2,1) 또 이런 천사들은 원로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이사 24,23) 아마도 요한 묵시록의 환시는 이처럼 하느님 곁의 천사들을 스물네 원로라는 표상으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하느님의 어좌 곁에 있는 네 생물도 등장합니다. 네 생물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에제키엘서(1,4-14)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레네오 교부 이후에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네 생물은 복음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네 복음서는 외아드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네 생물은 사자, 황소, 사람 그리고 독수리의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자’는 마르코 복음서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를 나타내는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 1,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포효하는 사자를 연상하고 그것을 통해 마르코 복음서를 나타내게 됩니다. ‘황소’는 루카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인 즈카르야입니다. 즈카르야는 사제였고 성전에서 가장 먼저 출생에 대한 예언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루카 복음서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였던 즈카르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사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대표적인 제물인 황소를 루카 복음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사람’은 마태오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혈통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점에서 마태오 복음서의 상징을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독수리’는 요한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초기의 교부 때부터 요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생각되었고 심오한 영성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는 마치 하늘 높이 날면서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으로 예수님의 삶을 꿰뚫어보고 우리에게 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29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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