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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 여행97: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묵시 7,4)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5-07 조회수4,248 추천수0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97)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묵시 7,4)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가 구원될 것이다

 

 

요한 묵시록은 하느님이 내린 두루마리에 담긴 환시를 전하고 있다.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양이 일곱개의 봉인이 있는 두루마리를 받는 모습.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작 ‘네 개의 봉인’ 부분. 출처=「아름다운 성경」

 

 

하느님의 어좌에 관한 환시에 이어 소개되는 것은 ‘어린양’에 대한 환시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어린양은 “다윗의 뿌리”로 소개되며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묵시 5,5-6) 이런 묘사와 함께 어린양은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이 어린양은 어좌에 앉은 분으로부터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받습니다. 이 봉인된 두루마리는 요한 묵시록에서 환시를 시작하고 종말을 향해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두루마리를 펼 때에 비로소 그 안에 적힌 내용을 볼 수 있고 그 내용을 보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봉인된 두루마리를 받은 어린양은 두루마리에 적힌 모든 일들, 의미적으로는 종말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어린양을 향해 외치는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의 노래에서도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묵시 5,9)

 

 

일곱가지 재앙 

 

이제 어린양은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고 본격적으로 재앙을 이야기하는 환시가 시작됩니다. 처음은 두루마리를 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일곱 봉인의 재앙입니다. 일곱 봉인과 함께 등장하는 재앙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재앙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일곱 봉인의 환시가 말하는 재앙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의 예고, 전쟁, 기근, 전염병과 들짐승, 박해, 하늘의 표징입니다.(묵시 6,1-17) 이런 재앙은 구약성경과 복음서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구약성경도 칼이나 전쟁, 굶주림, 사나운 짐승, 흑사병을 통해 하느님의 재앙을 이야기합니다. 또 복음서는 종말과 함께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박해, 하늘의 표징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루카 21,9-13; 마르 13,7-17) 이처럼 전통적인 재앙과 요한 묵시록에서 보여주는 재앙이 비슷하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재앙을 일으키는 분이 누구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봉인으로 인한 재앙의 마지막은 그다음에 올 일곱 나팔에 의한 재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일곱째 봉인은 새로운 일곱 나팔의 재앙을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졌습니다.”(묵시 8,2) 이 마지막 재앙 전에, 곧 여섯째 재앙과 일곱째 재앙의 사이에는 성격이 다른 환시가 하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7장 전체를 통해 전하는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이 환시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재앙을 가져오는 봉인의 환시와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는 서로 성격이 다릅니다. 쉽게 말한다면 선택받은 이들은 구원될 이들을 표현하는 환시이고 봉인의 환시는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세상의 악의 세력에게 내리는 환시입니다. 그렇기에 선택받은 이들의 환시는 하느님의 재앙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재앙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재앙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이들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는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14만 4000명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온 것으로 표현됩니다. 우선 여기에 사용된 14만 4000이라는 숫자는 실제적인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숫자는 두 번의 12와 1000으로(12×12×1000) 이뤄집니다. 본문에서도 암시하는 것처럼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열두 지파로 나타나는 구약의 하느님의 백성 그리고 열두 사도로 상징되는 예수님 시대의 믿는 이들을 모두 일컫는 숫자입니다. 결국 14만 4000은 구약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장을 지닌 이들, 곧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구원될 것이라고 말하는 환시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6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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