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여호수아 성경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점 중 하나가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 본문이 말하는 시대와 그 본문이 쓰인 시대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본문이 말하는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이 부합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작성 시기의 사건들을 과거의 사건처럼 외돌려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들은,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본문이 형성되던 시대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또한 성경이 한 번 쓰인 이후 멈춘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할 때까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성경의 역사와 실제 역사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그 안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반복, 고대 근동의 다른 역사들과 부딪히는 부분들 앞에서, 실제 역사를 부정하거나 본문의 뜻을 곡해하는 오류를 범하거나 성경의 말씀들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진리의 문제를 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성경은, 분명 역사적인 사건들을 전해주고 있지만, 그 과거의 사건을 정확하게 전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은 사실(史實)을 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은 누구신지, 그분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신지, 우리는 그분 앞에서 누구인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설화와 전설, 역사와 문학, 시와 노래와 격언 등을 통해 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진리-신앙의 진리를 말하면서 성경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그분과 함께 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변화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서 본문의 의미에 대해 탐구합니다. ‘본문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가? 그 본문을 작성한 이의 의도는 무엇인가? 문학적 형식과 그 발전 속에서 어떤 의미들이 생겨나고 변화되었는가? 이 본문을 신앙 공동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는가?’ 등의 문제들을 다룹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자나 문구의 의미를 넘어서, 그 말이 앞뒤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 큰 단위에서는 어떻게 읽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말씀의 진리에 다가가려 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이 말씀은 주님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우리 시대, 우리 공동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말씀을 주시는 주님 앞에서 나/우리/교회/국가/세상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그때 우리는 성경이 지나간 과거의 문자들이 아니라 지금 내게 들려주는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해야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께 대한 신앙의 눈으로 읽고 신앙의 귀로 듣고, 신앙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 말씀의 진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와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오늘 우리가 만날 여호수아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에프라임 지파 ‘눈’의 아들(여호 1,1) 여호수아(‘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탈출기에서부터 등장합니다. 그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동행하고(탈출 24,13; 32,15-17), 만남의 천막을 지키는 일을 합니다(탈출 33,11). 가나안 정탐 이야기에서는 칼렙과 함께 긍정적인 판단을 제시하는데(민수 13,1-30) 후에 이 둘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민수 14,30).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은 이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하십니다(민수 27,15-23; 신명 3,28; 34,9). 여호수아기는 그를 모세와 같은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모세처럼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견하고(민수 13장; 신명 1,19-46),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가게 합니다(탈출 14장; 여호 3장). 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파스카 축제를 지냅니다(탈출 12장; 여호 5,10-12). 주님 군대의 장수 앞에서 신을 벗는 장면은 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와 비교됩니다(탈출 3,5; 여호 5,15). 전투에서 그도 손을 뻗어 승리를 얻습니다(탈출 17,8-13; 여호 8,18-26). 잘못한 이스라엘을 대신해 주님 앞에 엎드려 간청하기도 합니다(탈출 32,7-14; 민수 14,10-19; 여호 7장). 또한 율법을 전해주는 자(여호 8,30-35)이며, 규정과 법규를 세우는 입법자로도 나타납니다(24,24). 여호수아에 대한 묘사들은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에서부터 동행한 위대한 인물이며, 모세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성한 이라고 말해줍니다. 후일에 집회서는 그를 주님을 충실히 따른 장수(집회 46,1-6)라고 칭송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예리코와 아이가 여호수아 시대 이전에 이미 파괴되었다는 고고학 연구들과 가나안 땅이 일순간에 점령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스라엘 차지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구약의 다른 책들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 여러 반복(이중기사), 모순되는 서술들 등을 바탕으로 여호수아기가 역사적(歷史的)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 책이 여호수아라는 위대한 장수를 내세워, 작성되던 시기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기는 실제로 그가 주님의 말씀과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했으며, 백성들도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후대에 나라를 잃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주님께 대한 충실함으로 돌아올 때, 주님께서 다시금 옛 영화를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기 첫 장에 반복되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1,6.7.9.18)는 격려의 말씀과 동행의 약속(1,5.9)에 함께 주어지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라.’(1,7.8)는 요구는 여호수아만이 아니라, 백성 전체에게, 후대의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2018년 5월 20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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