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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8: 내 친구야(아가 4,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579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8) 내 친구야(아가 4,1)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4장입니다. 그저 첫 구절에서 하염없이 멈추어 서 있고 싶은 본문입니다.

 

 

“너 정말 예쁘구나”(4,1: 필자 직역)

 

서로를 부르며 찾던 남녀가 이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아가의 구성을 되짚어 보면, 1,2-2,7의 서문이 끝난 다음, 2,8-17에서 여인의 집에 연인이 찾아왔습니다. 봄이 되었다고, 밖으로 나오라고 담장 밖에서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둘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아직 그 부름에 응답하여 나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1-5에서는 여인이 뒤늦게 집을 나서 잃어버린 연인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3,6-11에서 여인은 가마를 타고 혼인 행렬과 더불어 ‘솔로몬’, 즉 자기 연인에게 갔습니다. 이제는 서로 만나 상대방의 아름다움에 ‘경탄’합니다.

 

이 아름다운 경탄 가운데에서도 특히 첫 절이 사람의 마음을 홀립니다. 이번 달 제목으로 4장의 첫 구절을 쓰려다가, 다 쓰기가 아까워 운만 띄우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그 구절이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번역이지만, 아마 이런 표현을 듣는 여인의 마음을 직접 느껴보지 못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제 번역은 “내 친구야, 너 정말 예쁘구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방을 쓰다듬으면서 해야 하는 말입니다. 이 남녀는 부부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내 친구’라고 부르면서, 그의 예쁨에 환성을 올리는 것입니다.

 

아가에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노래가 네 번 나옵니다(4,1-7; 5,10-16; 6,4-7; 7,2-8 참조). 이러한 형식의 노래는 고대 아랍 문학과 팔레스티나 주변 문화에 있었고, 이집트의 사랑 노래에서도 애인을 묘사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혼인 예식의 한 부분으로서 주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려 보이곤 했는데, 아가에서는 4장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다음, 5장에서 오히려 여인이 남자 연인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예는 상당히 드뭅니다. 아가에서 여인의 아름다움만 노래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을 묘사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서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예쁜 여자’가 일방적으로 성적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존중하며 감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여정’에서 결정적 순간이 됩니다. 4장의 경우만 먼저 살펴본다면, 4,1-7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에 ‘경탄’한 다음 4,9-5,1에서 연인은 여인의 사랑을 ‘향유’합니다. 연인이 ‘예쁘다’고 했을 때 사랑하는 여인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정하고, ‘경탄’까지 이르렀을 때 여인은 그렇게 소중한 자신을 내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두 눈은 비둘기라오”(4,1)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첫 번째 노래는, 여인의 두 눈에서 시작하여 머리채, 이, 입술, 볼, 목으로 점점 내려오면서 젖가슴까지 이릅니다.

 

여기에서 아가에서 사용하는 비유의 한 가지 특징을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대의 두 눈은 비둘기”(4,1)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인의 눈이 비둘기의 눈과 같은 모양이라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비둘기의 눈이 예쁜가요? 글쎄요. 이 비유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비둘기 또는 비둘기의 눈이 아니라 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비둘기는 사랑의 여신의 메신저입니다. 그래서 “그대의 두 눈은 비둘기”라는 말은 여인이 나에게 눈길을 던질 때에 그 눈길이 강렬한 사랑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입니다.

 

‘머리채가 염소 떼 같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흑염소같이 새카만 머리채?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까만 머리를 곱게 빗어서 땋거나 쪽을 찐 것과 거리가 멉니다.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머리채를 생각해야 합니다. 염소 ‘떼’는 또 무엇을 뜻할까요? 다음에 나오는 한양 양 떼에 비하여, 새카만 염소 떼는 야생의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길앗 비탈을 내리닫는 염소 떼”(4,1)는 주체할 수 없는 힘,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매력을 지칭합니다.

 

이와 달리 하얀 이가 “세척장에서 올라오는 양 떼”(4,2) 같다는 것은 질서 있고 깨끗한 인상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두 쌍둥이를 낳아 새끼를 잃은 것이 하나도 없구려”라는 말은 다시 염소 떼와 같은 다산성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염소 떼와 양 떼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는 하느님의 첫 강복을 상기시킵니다.

 

이어서 나오는 “진홍색 줄과 같은 그대의 입술”(4,3)은 입맞춤을 위한 것입니다(4,11 참조). 볼이 ‘석류 조각’ 같다는 말은, 사실 ‘조각’이라고 번역된 단어부터 뜻이 분명하지 않아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여러 갈래로 의견이 나뉘지만, 어떤 경우이든 석류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혼례에서 폐백할 때 밤과 대추를 신랑 신부에게 던지며 후손을 기원하듯이, 팔레스티나의 농민들은 같은 의미로 신혼부부를 위해 석류를 으깬다고 합니다. 염소 떼의 숫자가 많았듯이 석류도 알이 많아 다산성을 상징합니다. 결국 염소, 양, 석류는 모두 사랑, 생명, 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천 개의 방패들”(4,4)

 

그런데 이제는 다른 종류의 상징이 사용됩니다. 여인은 목은 ‘탑’ 같다고 합니다. 목이 탑처럼 가늘고 길다는 뜻일까요? 그럼 코(7,5)나 가슴(8,10)이 탑이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기에서도 앞서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탑의 모양보다 탑의 기능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탑은 가늘고 높다기보다 굵직했습니다. 탑처럼 생긴 목, 코, 가슴이 예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탑은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탑 같은 목에 “천 개의 방패, 용사들의 원방패”(4,4)가 달려 있다는 구절에서도 알아볼 수 있지요. 여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성적 매력이 넘쳐나도(4,1-3 참조), 여인은 자신을 방어할 줄 압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쉽게 내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분명한 의식, 이것이 아가의 주인공 여인의 매우 강한 매력입니다. 여인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에게나 자신을 줘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요즘 잘 쓰는 말로 ‘자존감’입니다. 그것이 여인을 지켜줍니다. 1장에서 오빠들은 누이동생이 쉽사리 사랑에 빠져버릴까 봐 동생을 가두려고 포도밭을 지키게 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강한 자존감을 가진 여인에게 그런 조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가의 주인공인 여인에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존감이 여인을 지켜 주고 쉽게 여인을 차지할 수 없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존감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내주게 합니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인은 자신을 내주게 되는 것입니다.

 

‘경탄’의 중요성은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인을 바라보며 “내 친구야, 너 정말 예쁘구나!”라고 말하는 연인은, 바로 여인이 지닌 가치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경탄이 “천 개의 방패들”이 걸려 있는 “다윗 탑” 같은, 요새 같은 여인을 무장 해제시킵니다. 2장에서도 이와 연관된 구절이 있었습니다. “내 위에 걸린 그 깃발은 ‘사랑’이랍니다”(2,4)는 구절입니다. 여기에서 여인은 정복당한 도성과 같습니다. 그 도성에 걸린 정복자의 깃발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무장된 성채인 여인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몰약 산으로, 유향 산으로”(4,6)

 

다음 단계는 연인이 “몰약 산으로, 유향 산으로” 가는 것입니다. “몰약 산, 유향 산”이 상징하는 것은 여인의 가슴이라고 생각합니다(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인에 대한 묘사도 가슴에서 끝났지요(4,5 참조). 이제 연인은 그 산으로 갑니다. 이어서 나오는 사랑의 향유는 다음 달에 읽겠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8월호(통권 437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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