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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11: 들어 보셔요,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아가 5,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672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11) 들어 보셔요,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아가 5,2)

 

 

아가 5,1에서 이미 연인이 신부에게 와서 사랑에 취했는데, 5,2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혼자 있습니다. 이제야 연인이 멀리서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가는 소설이 아닙니다.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래서 줄거리가 없습니다. 아가는 ‘아름다운 노래’, 감정을 노래하는 시(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3월호에서 소개한 아가의 구조에서 보았듯이 아가에서는 같은 주제가 반복됩니다. 서문(1,2-2,7)이 끝난 다음에 시작되었던 사랑의 여정은 5,2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됩니다. 제1부(2,8-5,1)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남녀는 서로를 찾고, 갈망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경탄하는 과정을 거쳐 사랑의 완성에 이릅니다. 그리고 아가의 마지막은 처음으로 돌아가며, 사랑의 일치를 다시 풀어 놓으며 끝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을 끝없이 다시 시작됩니다.

 

 

“내게 문을 열어 주오”(5,2)

 

몇 달 전에 만난 어떤 분이 – 그분도 수녀님이셨는데! - 제가 쓰고 있는 아가 해설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연애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아가에 대해 쓸 수가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아가 주석서를 남성이 섰다고 생각하면, 그 책의 저자들보다 제가 아가의 주인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합니다. 아니 사실 그 과정을 반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아가를 읽으면서 여성성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것 같았지요. 용감한 우리의 주인공 아가씨 덕분에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제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도 상당히 여성적입니다. 사랑의 부름에 단번에 응하지 못하고 한번은 놓치고 마는 것이지요. 사랑이 처음 다가올 때 한편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으나 실제로 달려가는 상상만 무수히 하고 마는, 그런 젊은 여인의 마음을 알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입니다.

 

 

“나는 잠들었지만 내 마음은 깨어 있었지요”(5,2)

 

밤입니다. 여인은 홀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밤에 여인의 문밖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문학 양식을 도입하기 위한 배경 설정입니다. 구전적 구애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연인의 문밖에서 부르는 노래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시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기본 형태를 보면 여인이 끝까지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그저 애틋한 동경을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사랑을 구하기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실제로 5절에서 여인은 문을 열 것입니다. 정해진 문학 유형의 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마음이 깨어 있었다고 하니까요. 잠을 자면서도 연인이 밖에서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에도 이와 유사한 암시가 있습니다. “들어 보셔요,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5,2)라고 번역된 구절의 원문은 “문을 두드리는 내 연인의 소리(또는 목소리)”입니다. 문만 두드렸는데 어떻게 연인의 소리인 줄 알까요? 아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리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연인은 그저 밖에서 오지만 여인의 마음에는 이미 사랑이 싹트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연인이 밖에서 여인을 부릅니다. “내게 문을 열어 주오”(5,2). 그러나 밤길을 달려온 연인에게 문이 바로 열리지는 않습니다. 별걸 다 가지고 토론한다고 하겠지만, 3절에서 여인이 문을 열어 주지 않기 위해 말하는 구실에 대해 학자들은 이런저런 논의를 합니다.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이미 발을 씻었기 때문에 문을 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핑계라고 봅니다. 옷 하나 걸치고 일어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이런 구실을 대었을까요?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보고, 어떤 이는 여인이 기다리다 지쳐 잠자리에 들었는데 연인이 늦게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여인은 문을 열고 싶었을 것입니다. 2절에서 본 바와 같이 이미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용기가 부족한 것이겠지요. 망설임이겠지요. 여기서 이 절과 2,8-14의 노래가 병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8에서도 5,2에서와 같이 “내 연인의 소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연인은 산에서 달려와 창틈에서 불렀습니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2,10). 그러나 여인은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였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간절히 불러 일으켜야 했습니다(2,14 참조). 5,3에서 여인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은 2장의 비둘기가 바위틈에 숨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사랑의 부름을 느끼고 있지만, 아직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네”(5,6)

 

조급해진 연인은 문틈으로 손을 내밀고, 여인의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5,4). 여기서 ‘가슴’이라고 번역된 단어 me im은 ‘내장’을 뜻합니다. ‘두근거렸네’라고 번역된 동사 hamah는 바다에 풍랑이 이는 것, 반란이나 봉기가 일어나는 것, 감정적 동요를 표현합니다. 그러니 심장이 뛴 정도가 아니라 속이 다 뒤흔들린 것입니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만 들었을 때에는 즉시 응답하지 않았지만, 문틈으로 내민 연인의 손을 보자 달라집니다. 여인 편에서는, 이때가 일어나서 문앞으로 나가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일어나 문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5,6).

 

왜 떠나갔을까요? 아무리 본문을 분석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서 주석에서는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하지 마라”고 합니다. 우스운 말 같지만 중요한 원칙입니다. 본문의 화자가 누구인지 보십시오. 5,2-8의노래는 온전히 여인의 시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연인이 떠나간 이유를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여인은 그저 떠나감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때를 놓쳤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기에, 사랑은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 어긋남은 오히려 여인의 갈망을 키워 줍니다. 이제는 여인 편에서 찾아 나섭니다. 이 부분 역시 아가 전반부에서 병행되는 단락인 3,1-5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5,8)

 

여인은 이제 자신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길거리로 나섭니다. 3장과 마찬가지로 야경꾼들을 만납니다. 이번에는 야경꾼들의 반응이 더 부정적입니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5,7).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보통 야경꾼들이 겉옷을 빼앗는 것은 여인을 창녀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밤중에 연인을 찾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행동은 이미 사랑 때문에 자신을 위험에 내맡기는 일이었습니다. 야경꾼들의 행위는 그 위험을 현실에서 보여 준 것뿐입니다. 야경꾼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은 야경꾼들의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랑에 수반하는 ‘대가’입니다. 여인은 사랑 때문에 앓고 있습니다(5,8; 2,5 참조).

 

사랑 때문에 병에 걸린다는 데에서 5,2-8의 노래를 꿰뚫는 주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자기 안에 사랑을 가득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누구 탓이 아니라 여인 스스로 마음에 있는 사랑을 펼쳐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에 고여 있는 사랑 때문에 병들었습니다. 이 병은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이제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하면서도 사랑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여인 안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 우리 안에 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 꼭 한 발씩 늦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한 발 늦음’과 그 후에 따라오는 애달픔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가능성을 그냥 묻어 버릴 수 없다고 확인해 줍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1월호(통권 440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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