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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18: 아가, 나의 이야기 (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390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마지막 회) 아가, 나의 이야기 2

 

 

지난번 편지의 수신인인 신부님께서, 성경의 여인들을 주제로 여러 저자의 책을 엮던 중에 아가의 주인공에 대해 ‘술람밋, 평화를 발견한 여인’이라는 글을 쓰시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어떤 의미에서 아가가 저의 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시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아래의 편지는 그 답장으로 제가 2010년 6월에 쓴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주 천천히 읽으시기를 부탁합니다.

 

작년에 저는 두려움에 대해, 자신에 대한 의식과 자신을 주는 것에 대해 썼습니다. 오늘 편지는 그 앞부분을 조금 반복하고, 전에 아직 쓸 수 없었던 것, 작년과 금년의 체험에 대해 계속 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4,1: 저의 번역은 “내 친구야, 너 정말 예쁘구나!”)라는 한 구절을 중심으로 할 것입니다.

 

 

술람밋: 아가의 ‘평화를 발견한 여인’

 

한 여인이 겪은 사랑의 여정을 묘사하는 아가는, 제 내면을 해부해 놓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의 부름에 저항합니다. 그것이 밖에서 오는 것 같고, 많은 요구를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 이런 모험을 해야 하는지? 집 안에 머무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을지? 정말로 사랑의 부름이 밖에서 오는 것이라면 저항할 수도 있겠지요. 귀를 막고 평온하게 살 수도 있겠지요(‘평화를 발견한’ 여인?).

 

그러나 사실 그 부름은 안에서 옵니다(1,8: “그대의 양 떼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그대의 새끼 염소들이 풀을 뜯게 하오”). 저의 경우, 저는 이 진리를 매우 늦게 알았습니다. 바로 아가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 쓴 것처럼, 저는 저를 닫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를 열어 놓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제 ‘본성을 거슬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가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제 안에서 사랑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뭔가 가로막혀 있다고 느꼈지만, 그 동기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두려움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작년 2월에 다시 한 번 아가를 읽으면서, 저는 제 두려움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 저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그 모험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느끼는 것을 말할 뿐이고, 모든 여성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 “정말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4,1 참조).

 

그런 상황에서 외부의 장애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아가 8,8에 나온 오빠들의 말은, 사회와 가족이 주는 장애를 대변합니다. “우리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네, 조그만 누이. 아직 젖가슴도 없다네.” 성벽이나 “향백나무 널빤지”(8,9)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권위를 가진 (또는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누이가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것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됩니다. 자신을 신뢰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신을 내어 줄 마음이 사라집니다(너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또는 네가 줄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가 8장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말하기 때문에 젖가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같은 내용을 수많은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겨울, 겨울…. 이것으로 사랑이 완전히 죽는다면 아마 더 간단하겠지요. 그렇지만 그 부름은 안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침묵시킬 수가 없습니다. 가로막힌 사랑은 상처 입은 사랑이지만 죽은 사랑이 아니고, 그래서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결과: ‘평화를 발견하지 못한’ 여인).

 

어떻게 평화에 이를 수 있을까요? 작년에 저는 편지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위에 걸린 그 깃발은 ‘사랑’”(2,4), “나와 함께 레바논에서”(4,8),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8,5)입니다. 이것이 해답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작년과 금년의 경험을 통해 이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사랑과 지지는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4,1)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가치의 인정. 아마도 저는 너무 약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자신에게 그 말을 해야 하는데, 저는 혼자서는 거기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연인이 저에게 그 말을 하며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2,14)라고 말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가에서 ‘경탄’이 지니는 역할입니다. 아가에서 연인이 서로 아름다움을 알아볼 때, 그것은 자신을 주는 것을, 결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특히 제가 의심을 품었을 때, 그것이 바로 저를 정복하는 ‘연인의 깃발’이었고,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창세 1장에서 주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다른 많은 이도 저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에 저는 여러 번, 저와 공동체의 자매들에게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라고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좋지만, 언제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는 그랬지만, 어떤 사람에게 아무도 그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언제나 효과가 있는 것은 창세 1장입니다.

 

어느 날 저는 저희 집의 커튼 하나를 빨았습니다. 저는 그 커튼이 새것이었을 때, 14년 전에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흰 커튼이었습니다. 많은 햇수가 지나고 나서, 커튼은 회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집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수녀들은 그 커튼의 본래 색깔을 몰랐습니다. 저는 그 커튼을 두 번 빨아 다리미질을 했습니다. 그때 한 수녀가, 그것이 어디 커튼인지 물었습니다. 성당 앞 창고 커튼이라고 하자, “회색인 줄 알았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창조의 선성(善性)’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커튼에게는 제가 그 본래의 색깔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 흰색을 되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이미 더러워진 커튼만, 부정적 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부차적인 것입니다.

 

‘평화를 발견한 여인.’ 8장에서 ‘평화를 찾은’ 여인은 정복된 여인입니다. “나는 성벽, 내 가슴은 탑과 같아요.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저는 평화를 찾은 여인이 되었지요”(8,10 참조). 성벽은 오빠들이(또는 다른 이들이)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그 여인이 아름답다고 할 때, 다른 이들이 그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여인 스스로 자신을 방어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인이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인정한다면, 무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3,7-8의 ‘이스라엘 용사들’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용사들이 그 여인을 보호하는 것은, 그 여인이 그들에게 소중하기 때문이고, 그 가치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를 존중할 줄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술람밋이 ‘평화를 찾은’ 여인이 되는 것은 그에게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라고 말하는 연인에게 정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능력이 실현되는 것은, 이렇게 자신을 주는 것이 (자신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에게) 폭력적으로 요구된 것이 아닐 때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에게, 보시니 “참 좋다”고 말씀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창세 1,31 참조).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3년 6월호(통권 447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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