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4) 나의 하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에 대하여 나의 하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신앙이 온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필자 직역 1,8 참조).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1,7 참조)는 축복 기도에 이어 ‘감사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1,8-10이 이어진다.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을 자주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갈라티아서처럼 감정에 복받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실제 문제를 청중에게 바로 표현하려 할 때는 ‘감사 대목’을 생략하기도 한다(갈라 1,6 참조). 대개 바오로 서간의 ‘감사 대목’에는 감사와 청원 기도가 함께 등장한다(에페 1,5 이하; 필리 1,3 이하; 콜로 1,3 이하; 필레 4절 이하; 2코린 1,1 참조). 감사는 기도의 정원에 첫 번째로 주는 물 로마서의 ‘감사 대목’도 감사 기도(1,8)와 청원 기도(1,9-10)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감사 기도’를 바치고 이어서 ‘청원 기도’가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도록 초대한다. “기도의 정원은 먼저 감사로 물을 주면 더욱 풍요로워지게 된다”(도날드 코간). 축복 인사, 영광송, 그리고 청원이나 중재 기도 등 바오로의 기도 언어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감사의 언어’이다. 내가 바오로를 직접 만나서 “당신의 기도 생활을 변화시키고 영감을 준 말이 있나요?”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눈을 빛내며 ‘감사’라고 즉시 대답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24시간 동안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이 있을까? 바오로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신 새롭고 놀라운 행위에 대한 지식이 그의 삶을 철저하게 바꾸었기에, 그는 항상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서는 그의 서간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슴에서 기도가 터져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오로가 감사드리는 이유 ‘감사하다’는 그리스어 동사(에우카리스테오)는 바오로 서간에서 24번 나온다. 일반적 기도를 가리키는 전형적 동사 ‘기도하다(프로세우코마이)’ 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오로 서간 전체에서 바오로가 감사를 바치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독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구속 활동 때문에 감사드린다. 이것은 과거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의 인격 안에서 드러났고, 현재에도 성령의 활동 안에서 계속 표현된다(1코린 1,4-9; 필리 1,6; 콜로 1,12-14; 1테살 1,4; 2테살 2,13-14 참조). 그러므로 바오로는 감사 기도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속 활동을 암시하는 ‘그분을 통해서’, 또는 ‘그분의 이름 때문에’(1,5 참조)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둘째, 바오로는 신자들이 그가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그들이 신앙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1코린 1,6; 필리 1,5; 콜로 1,6; 1테살 1,3-10; 2,13-14; 2테살 2,14 참조). 셋째,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로마 1,8; 에페 1,15; 콜로 1,4-5; 1테살 1,3; 2테살 1,3-4; 필레 5절 참조). 1,8에서 바오로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동기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표현된다. 바오로는 온 세상에 알려진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때문에 감사드린다. 언제 누구에 의해 로마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당시 잘 닦인 로마의 도로망을 통해 이름 없는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로마 공동체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오로는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지만 로마인들의 신앙에 대한 소식을 듣고 큰 기쁨에 차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얻게 된 ‘신앙’의 선물에 대해 스스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서도 돌아보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바오로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 부족하다고 전제하며 그들이 회심하기를 바라면서 로마서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오로는 무엇보다 로마서의 메시지를 통해 로마인들이 이미 잘 살고 있는 신앙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바오로가 로마에 복음을 전하려고 간절히 원한 것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데 있다(1,11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에게 바오로의 감사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대부분 하느님이다. 바오로는 여러 이유로 친구나 후원자에게 감사를 드릴 때도 있지만(필리 4,10-18 참조), 하느님을 모든 복의 궁극적 원천으로 여긴다. 이것이 그리스와 로마 문화권에서 사용하던 감사와 바오로의 감사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바오로는 구약의 시편 저자들처럼 ‘나의 하느님’이라는 칭호로 하느님을 부르며 감사 기도를 바치는데, 이로써 자신과 절대적이고 무한한 존재와의 내밀한 관계를 표현한다.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시편 22,11). 바오로에게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 그의 삶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마음 안에 일어나는 온갖 섬세한 움직임을 다 아시는 분이다. 바오로는 ‘나의 하느님’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δια Ιησου Χριστου)’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그리하여 바오로의 기도 언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해 두 가지를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첫째, 바오로가 기도를 바치는 대상은 하느님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다. 이 점이 바오로의 기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바오로에게 기도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바오로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느님과 새로운 구원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한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분은 인간이 아버지인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로마서에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열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5,1 참조),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52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게 되었으며(5,9 참조),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5,11 참조). 이렇게 볼 때 바오로가 행한 감사 기도의 근본 중심이 왜 아들을 통한 하느님 아버지의 구속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왜 ‘감사’의 중재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콜로새서 저자는 바오로의 생각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콜로 1,13-14). 이 관점은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기도가 구분되는 특징이다.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1,8의 감사 기도에서 우리는 기도 생활에 빛을 비추어 주는 중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어지지 않은 복이나 건강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나아가 내가 만나 보지 못한 지구 반대쪽의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깊이 살펴보는 것이 기도 생활, 나아가 영성 생활 전체에 대단히 중요하다. 성령께서 열어 주시는 ‘신앙의 눈’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고 감사를 드릴 수 있게 한다. ‘감사’를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여러 가지 봉사 활동과 신심 행위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노래를 잃어버린 카나리아처럼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이 모든 일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피조물로서 자신을 지은 창조주에게 ‘감사(에우카리스티아)’가 터져 나오도록 영감과 힘을 주는 사람이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4월호(통권 433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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