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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5: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에게 갈 수 있기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617 추천수0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5)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에게 갈 수 있기를

 

 

“그분 아드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나는 끊임없이 여러분 생각을 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든 내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빌고 있습니다”(로마 1,9-10)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로마인의 신앙에 감사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1,8 참조), 하느님의 뜻에 따라 로마 교회를 방문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1,9-15 참조). 위대한 사도 바오로도 오늘 우리가 매일 체험하듯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온전히 맡기는 것을 기도하는 가운데 인내하며 배워야 했다.

 

 

그분 아들의 복음 선포를 통해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

 

바오로는 감사 기도에 이어 1,9-10에서 자신이 로마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알린다. 그는 이 기도의 증인으로 “그분 아드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을 내세운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움직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동사 ‘섬기다(라트레우오)’는 말은 원래 제사와 관련된 예배 용어이다. 바오로는 벤야민 지파 출신이자 바리사이로서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사와 전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예배 용어를 하느님 아들을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도 직분과 관련시킨다. 바오로에게 복음 선포는 ‘내 영으로’ 즉 그의 지성과 의지, 사랑 등 자신의 삶 전체로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이다. 그는 훌륭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그가 어떤 상황에서든 온전히 하느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사도직을 수행한다.

 

이런 자세는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을 단순히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제직’(로마 15,16)으로 여겼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그는 특별한 봉사 직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도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예배로 여겼다(로마 12,1 참조). 그리스도는 희생되신 ‘파스카 양’(1코린 5,7)이며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마 3,25)로 내세우셨다는 데 그 근거가 있다. 바오로가 자신이 로마인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알리면서 “그분 아드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자신의 사도직(로마 1,5 참조)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로마인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끊임없이 여러분을 생각하며

 

바오로는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운 뒤 로마인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서간에서도 기도할 때 신자들을 기억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바오로 서간에서 ‘기억하다’는 중요한 기도 용어이다(2티모 1,3 참조).

 

바오로에게 기도란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물러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기억하는 것’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과 당신을 함께 생각할 것입니다”(조지 맥도날드). 끊임없이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표지이다. 여기서 바오로는 보이지 않는 로마인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가 본질적으로 지닌 영적 애정을 표현한다.

 

그는 가슴 속에서 샘솟듯 솟아나는 애정을 감추어 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항상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데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 우정의 그물은 그가 사도직을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바오로는 로마인들을 만나기 전에 하느님 앞에서 그들을 항상 기억한다는 말로 이메일이나 전화보다 훨씬 더 차원이 깊고 단단한 기도의 영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로마로 가려는 이유

 

바오로는 다른 서간에서 종종 기도 안에서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말을 쓴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생각하는 것’의 내용을 적는다(에페 1,16-19); 필리 1,3-5; 1테살 1,2-3; 2티모 1,3-5; 필레 4-6절 참조). 로마서가 이 유형을 따른다면 로마 방문에 대한 바오로의 갈망(10절)은 그가 바치는 기도 내용(9절)이 된다. 그가 로마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1,11-15에 서서히 드러난다.

 

첫째, ‘영적 선물’을 나누어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이다(11ㄴ절). ‘영적 선물’이란 아마도 복음 설교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일 것이다. 둘째, 그것을 통해 바오로는 자신과 신자들이 다 함께 격려받기를 바란다(12절). ‘힘을 북돋다’와 ‘격려하다’는 서로를 비추는 말이다. 서로 격려해 주는 데서 막강한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목자도 신자들의 신앙에서 격려받을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그의 사도직에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신자들이 알기 바란다. 바오로가 단지 주려고만 했다면(일방통행식의 사목) 결국 그는 인간적으로 매우 가난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셋째, 바오로는 다른 교회처럼 로마 교회에서도 어떤 ‘열매’를 거두려 한다(13절). 아마도 이 열매는 모교회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금을 의미할 것이다(15,28 참조). 로마에 가고 싶어 하는 갈망은 15절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바오로가 로마에 가려는 것은 개종자들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로마에서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 그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을 알려 그들을 확고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성하는 데 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바오로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이 로마에 갈 수 있기를 기도했지만 그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긴다. 그는 로마 방문 계획이 여러 차례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13절; 참조 15,22),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10절; 참조 15,32). 나아가 ‘하느님의 뜻’은 그의 생애를 각인하는 말이다.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뜻’이었다(2코린 1,1; 콜로 1,1; 에페 1,1; 2티모 1,1 참조). 그래서 그의 마음은 그릇을 빚는 도공처럼 자기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뜻’에 항상 일치해 있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바오로가 하느님께 바치는 깊은 경배이기도 하다.

 

이렇듯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도의 모습은 구약성경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전형적 자세를 상기시킨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더 정확하게는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그의 기도를 그분이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시편 18,7; 65,3; 예레 29,12 참조). 그러므로 바오로는 굳은 신뢰로 기도한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멀스멀 스며드는 유혹과 의심을 알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내맡긴 예수님을 닮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바오로는 주어진 때가 당도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릴 줄 안다. 헤아릴 수 없는 섭리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자신의 영혼으로 하여금 합당한 뜻을 좋게 한다”(요한 크리소스토모). 바오로는 개인의 삶과 봉사 직분에서 지금 인간적으로 좋게 보이고 사도직에서도 효과 있게 보이는 일조차,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분이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5월호(통권 434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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