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마지막 회) 기도하는 사도 바오로 첫 회에서 필자는 ‘바오로는 기도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했다. 마지막 회는 ‘로마서를 읽은 후에 바오로는 어떤 면에서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로마서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오로의 영성, 곧 바오로라는 한 신앙인이 실천한 신앙(lived faith)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참된 성경 해석은 문자적 의미에서 출발하여 영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본보기가 된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를 ‘감사’로 시작하며(1,8 참조) 중요한 맥락에서 마음에서 절로 솟아나는 감사 기도를 터뜨린다(6,17; 7,25 참조).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았기에 무엇보다 먼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를 강조한 점에서, 타종교와 다른 그리스도교 기도의 독창성을 보여 준다. ‘감사’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나의 신앙고백이다. 감사 행위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모든 선의 근원이심을 알고, 이 신앙의 진리를 마음과 입으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는 기도의 첫말이 아니라 항상 둘째 말이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속, 자연과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응답이 그분에 대한 찬미인 까닭이다. 따라서 바오로의 감사는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서 일하고 계심을 알아보고 그분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로마서에서 감사는 바오로가 자신의 삶과 믿는 이들의 삶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아보고, 그런 일을 하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흠숭과 그 비슷한 말로 기록된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중재 기도의 배경은 형제애인데, 이 사랑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 감사는 하느님 앞에서, 아들로서 심오한 실존 안에 새롭게 변형된 그리스도인의 태도다. 이런 의미에서 ‘감사’는 로마서에 나오는 다른 중요한 신학 용어인 ‘은총’, ‘신앙’, ‘의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도 로마서에 나오는 기도의 대부분은 바오로가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해, 또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다. 이것은 바오로의 마음 안에서 중재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신의 사도직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바오로가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충실한 유다인이던 바오로는 이런 자세를 구약성경과 유다인의 전통이라는 유산에서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가장 위대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모범을 발견했을 것이다. 바오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에게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아들’을 본다. ‘순종’이라는 말은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포괄할 수 있는 용어다. 그는 다마스쿠스 체험에 토대를 두고 자신의 ‘십자가 신학’을 발전시켰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그분의 의로움에 대한 지식은 바오로가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한 데서 나온 열매다. 이런 관점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삶과 다른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에서 ‘하느님의 뜻’을 강조한다. ‘인간의 청원과 하느님의 뜻 사이의 관계’라는 질문은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바치는 모든 청원 기도에서 암시된다. 바오로는 기도를 통해 현재 처한 모든 문제나 기원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내려놓는다. 이는 구약에 언급되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다르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바오로의 기도가 종말에 대한 비전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오로의 중재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삶을 영위하면서 하느님을 위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바오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로마서에서도 단 한 번,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 여행을 앞두고 로마 신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그러나 그런 기도 부탁도 로마 신자들 역시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서 그의 사도직에 동참함으로써 교회의 사도직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기회가 된다.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사도 로마서는 바오로가 하느님께 바치는 영광송(16,25-27 참조)으로 끝난다. 바오로가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방계 그리스도인과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서다(15,3-7 참조). 일치된 교회로 지상에 하느님의 영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교회 밖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시어 부어 주신 은총을 자각하는 감사 기도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은총이 흘러들어가기를 기원하는 중재 기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기도하는 사람을 데려와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바치게 한다. 그러므로 감사, 중재, 찬미라는 기도의 세 가지 유형에는 상호관계가 존재한다. 바오로 기도의 중심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관상,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관상이 자리 잡고 있다. 바오로 사도직의 목적은 이러한 하느님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 때문에 그의 사도직은 하느님께 계속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바오로의 신학은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영광송이 된다. 바오로의 기도, 신학과 영성을 연결하는 다리 바오로는 사도직을 시작할 때부터 기도에 대한 조직신학을 만들지는 않았다. 기도에 대한 신학은 다마스쿠스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한 뒤 오랫동안 사도로 살면서 발전되었다. 가장 깊은 바오로의 신학을 담고 있는 로마서는 이런 점에서 바오로의 기도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바오로의 모든 신학이 그렇듯 그의 기도 신학도 그의 체험과 분리될 수 없다. 그의 기도 신학은 하느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바오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관상하면서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것’이 기도라고 가르친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 가난한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단지 인간적인 것에만 의지해서 만들어진 기도 개념은 하느님의 권능과 선함을 관상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바오로의 모든 신학은 그의 기도 안에서 발견된다. 그의 신학은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는 신앙, 관상된 신앙이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전능하신 하느님, 계약의 하느님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진정한 신학을 소개한다. 우리의 신학이란 단 한 줄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이 신학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우선권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A. 함만). 그런 점에서 바오로의 기도에 대한 연구는 바오로의 신학과 영성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본성상 참된 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로마서를 읽으면, 바오로의 기도가 바로 하느님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에 관한 말인 신학(teo-logia)에 집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오로 사도여, 우리가 깊은 신앙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주님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순결한 양심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도가 되도록, 우리 시대의 어둠 한가운데에서 교회의 아름다움과 진리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바오로가 갇혔던 로마 레골라 성당의 기도문). * 덧붙임 이 연재 글은 필자의 학위 논문 <성령께서 우리 기도 가운데서 말씀하신다(로마 8,14-27) 주석과 신학>에서 4장(로마서의 기도)의 주석 부분을 필자가 성찰을 곁들여 우리말로 풀이한 것입니다. 2년 동안 로마서 해석의 여정에 함께한 독자와 편집부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2월호(통권 453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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