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영성 (4) 그리스도교인은 성경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예수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을 꾸짖으며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마르 12,27).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한 우문(愚問)에 예수님께서 현답(賢答)으로 응수하시자(마르 12,12-17 참조), 사두가이들이 그 틈을 타서 백성 앞에서 우쭐거리려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성상이나 성화로 접하는 예수님은 대개 서양인의 모습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유다인이다. 신약성경에서 접하는 예수님은 유다인의 율법 정신을 잘 이해하시고, 유다인의 성경 권위를 존중하신다. 그분은 유다인이 소중하게 여겼던 계명(신명 6,5 참조)을 가장 큰 계명으로 꼽으셨으며(마태 22,37-40 참조), 세상이 끝날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셨다(마태 5,18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 못지않게 유다인의 성경과 율법 정신을 잘 꿰뚫어 이해하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늘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의 성경과 율법을 답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산상 설교에서 율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율법의 참뜻과 정신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율법을 적용하기도 하셨으며(마태 5,21-37 참조), 기존의 율법을 무력화하고 하느님의 뜻이 더 잘 반영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셨다(마태 5,38-48 참조). 또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보다 성경이 암시하는 뜻을 더 잘 해석하셨다. 즉 다윗의 자손과 메시아의 관계를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명쾌하게 규정하셨다(마태 22,41-45; 마르 12,35-37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경을 잘 이해하시는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은 당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관련된 사항을 해석하시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에 사렙타의 과부와 엘리야 예언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과 엘리사 예언자에 관련된 성경 일화를 언급하시면서 만민 구원에 대한 당신의 사명을 밝히셨다(루카 4,25-27 참조). 또 유다인의 성경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9).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다음에는 다시 한 번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 24,44). 결국 예수님께서는 늘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교인이 굳은 믿음을 지키고 올바르게 영성 생활을 하기를 바라셨다고 볼 수 있다. 사도들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전하였다 사도들은 예수님보다 더 많이 성경에 의존하고 성경을 인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약간의 견해 차이로 논쟁이 벌어졌을 때 공자나 맹자의 말은 인용하면 사람들이 대개 수긍하여 사태가 마무리되었듯,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유다인에게 증언하고자 할 때 성경의 권위를 가지고 접근하면 더 쉬우리라 여겨 성경을 자주 인용하였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므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보다 자유롭게 성경을 해석하신 반면, 사도들은 유다교 지도자들과 비슷한 입장에서 성경에 접근한 것이 미미한 차이다. 사도 바오로는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가 분명히 밝힌다.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로마 15,4).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와 바오로의 선교 연설문을 보면, 청중이 유다인이거나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일 경우 그들은 성경 말씀을 더 많이 인용하면서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17,2-3). 사도들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깨달으면서 유다교의 해석을 넘어서게 되었다. 사도들은 성경을 통해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구원 사업이 무엇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구원 사명을 완성하셨는지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1코린 15,3-4)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다고 말한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고자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부활하시어 우리를 이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25). 사도들은 성경을 해석하면서 유다인과 달리 구세주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닫고 우리에게 그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구원 사명을 깨달은 사도들은 그리스도교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을 인용하면서 새롭게 선택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그리스도교인을 정의한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엄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대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1베드 2,9-10). 또 그리스도교인은 하느님 백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느님 자녀의 지위도 얻게 되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21).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은 성경 말씀을 통해 겸손한 영성 생활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코린 1,31).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계시는 신구약 성경에 하나로 묶여 있다 이렇게 예수님과 사도들이 유다인의 성경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본 초대 그리스도교인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자세를 본받아 구약성경에도 신약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부여하고 신앙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신약성경의 메시지에 따라 해석하였을 뿐 아니라, 신약성경을 읽을 때도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삼아 해석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계시가 동일하게 흐르면서 두 성경이 단일하게 묶여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단일성은 예형론(豫形論)의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수많은 업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이 구원 계획을 완성하실 것을 미리 암시하였다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8항 참조). 예를 들어 세상의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선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초대 교회는 구약성경에서 취한 호칭인 새로운 아담, 새로운 모세, 신명기에서 약속된 예언자,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약속된 후손,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받는 주님의 종,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신비한 ‘사람의 아들’ 등을 사용하였다. 또 교회는 유다인의 파스카 음식이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며 행하는 그리스도교인의 성찬례 예형이라고 강조하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은 예형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1항). 초대 교회 신자들은 이 점을 깊이 깨닫고 영성 생활의 발전을 위해 늘 신구약 성경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의 인도에 따라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깊이 머물러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고,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4월호(통권 433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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