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통화 기능을 훨씬 뛰어넘어선 요즘 시대의 스마트폰. 이 똑똑한 기기의 기능 중에 정말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것이 ‘길 찾기’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선 곳을 찾아갈 때면, 정보가 빈약한 약도를 손에 들고 길에서 그곳이 어딘지 물었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더 길을 헤매고, 쭉 앞으로만 가면 금방 도착할 것을 빙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똑똑한 기능은 사람의 기억력을 퇴화시키고 있습니다.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가기 위해 또 스마트폰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 없이 찾아간 곳이 아니라 힘들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거기에 발품과 땀이 배어 있으니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길 찾기 앱’ 이스라엘 백성은 일단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그들은 낯선 땅으로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들에게 ‘길 찾기’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있었을까요? 물론 없었습니다. 그러나 없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탈출 13,21).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 찾기 앱’이었던 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우회로를 선택하셨을까? 그런데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가장 빠른 길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을 지나는 길이 가장 가까운데도,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갈대 바다에 이르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탈출 13,17-18). 성경에서 말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을 지나는 길’은 지중해 해안을 따라 동북쪽으로 난 무역로이자 필리스티아인들의 군사 도로였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파라오가 추격해 오기 쉬운, 가장 위험한 길입니다. 반면 ‘갈대바다에 이르는 광야 길’은 갈대 바다를 건너 시나이 반도 남단으로 내려가 시나이 광야를 지나는 길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다시 북동쪽으로 올라가 모압 광야를 거쳐야 합니다. 쉽게 말해 아래로 쑥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가는 U자 모양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일자로 쭉 뻗은 길과 빙 돌아가는 길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왜 우회로를 선택하셨을까요? 이집트 탈출 이야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갈대 바다가 쫙 갈라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파라오의 끈질긴 추격입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립니다.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탈출 14,5)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 앞에서 잠깐 슬픔에 잠겼던 그들이 냉정을 되찾습니다. 말을 탄 이집트 군대가 육백 대나 되는 병거를 앞세우고 무서운 기세로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뒤로 군사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맙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탈출 14,11)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다’는 말이 그들의 처지를 기막히게 드러냅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불안, 처음 맛보는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휩싸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바닷물을 밀어내어 마른 땅을 만드신 하느님 앞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뒤는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 이스라엘 백성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실 분은 역시 하느님 한 분이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탈출 14,15). “앞으로 나아가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두려워하지들 마라”(탈출 14,13)는 모세의 말을 듣고도 주저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탈출 14,21).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참으로 사랑하시기에 밤새도록 바닷물을 밀어내십니다. 밀려난 바닷물은 이스라엘 백성을 온갖 위험에서 막아 주는 든든한 벽이 됩니다. 죽음과 어둠을 상징하는 바닷속이 어머니의 자궁 같은 생명의 터전이 됩니다. 바다를 건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파스카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다 건너간 뒤, 이집트 군사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은 모두 바닷물에 잠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물과 그들을 동요케 했던 모든 불안이 바닷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갈라졌던 바다는 다시 합쳐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그 바다를 다시 건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살던 풍요로운 이집트 땅, 묏자리가 사방 천지에 널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파스카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느님을 찐하게(!) 체험합니다. 창검으로 무장한 이집트 기병, 모래바람을 휘날리며 돌진해 오는 수백 대의 병거가 무서워 벌벌 떨던 그들이 마침내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탈출 14,31) 됩니다. 내 신앙의 길 찾기는? 파라오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쁨에 겨워 주님께 노래합니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이분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탈출 15,1-2). 그러나 그들은 기쁨의 노래를 부를 때 광야에서 겪을 고난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오랜 세월을 거쳐 험난한 길을 따라 가나안 땅에 가야 하는지, 그 길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길 찾기’는 갈대 바다를 건너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길 찾기’는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성서와 함께, 2013년 6월호(통권 447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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