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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생수의 강들이 흘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603 추천수0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 생수의 강들이 흘러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요한 7,37-39).

 

 

유다인에게 물의 의미

 

우리말에서 ‘물건을 헤프게 쓰거나 돈 따위를 흥청망청 낭비하는 것’을 가리켜 ‘물 쓰듯 한다’고 표현합니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이고 곳곳에 강과 시내가 흐를 뿐 아니라, 어디든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우리나라에서 물은 흔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팔레스티나는 영토의 상당 부분이 산악 지대와 광야이고, 유일하게 남북으로 흐르는 요르단 강은 깊은 지구대(地溝帶) 사이를 지나기에 물을 끌어다 쓰기 어려웠습니다. 와디(wadi)도 우기에만 한시적으로 흐르는 강이기에 이스라엘에서 물은 무척 귀했고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두 종류의 물

 

유다인은 물을 어떻게 얻느냐에 따라 ‘사람의 손이 닿은 물’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물’로 나누어 이해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은 물이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 얻은 물을 말합니다. 유다인은 한 방울의 물이라도 귀하게 여겨, 기술적으로 찾은 물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를 대비하여 한 곳에 저장하였습니다. 산간 지역에서는 웅덩이를 파우기에 내린 빗물을 모았습니다. 기원전 15세기경, 이스라엘 산지에 많은 석회암을 곱게 갈아 회반죽을 만들어 방수 처리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웅덩이는 거대해졌고, 6개월의 건기를 버틸 만큼 충분한 양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웅덩이는 인생의 수고와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형제들이 내쳐 빈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창세 37,12-24 참조)과 저수 동굴에 갇힌 예레미야(예레 38,1-6 참조)가 그 예입니다.

 

우기에도 충분한 비가 오지 않는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찾아 우물을 팠습니다. 브에르 세바 광야 같은 곳에서 우물을 얻는 과정은 더욱 어렸웠습니다. 수원(水原)이 깊어 우물을 얻기 위해서는 15-20m까지 파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굴착기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땅을 파는 수고가 매우 컸고, 엉뚱한 곳을 파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만나 이야기와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여행자가 제일 먼저 찾는 곳도 우물이어서, 우물은 마을의 중심부 역할을 했습니다(창세 24,11-20; 29,1-10; 요한 4,1-26 참조). 광야 한복판에 있는 부족 소유의 우물은 지나가는 길손이 마실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우물이 성문 가까이 있을 경우에는 그 성읍에서 우물을 관리하고 약간의 사용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웅덩이는 판 사람이 소유주이기에 주인의 허락 없이 남의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면 고소를 당했습니다. 물과 관련한 소유권이 매우 중요한 문제인 만큼, 이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창세 21,22-34; 26,15-33; 탈출 2,15-17 참조).

 

성읍에서는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 오기 위해 지하 터널과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하자 히즈키야 임금은 도성 밖에 있는 샘들과 물줄기를 막고 지하 터널을 만들어 성 밖에 있는 수원지에서 성 안의 실로암 못으로 물을 끌어왔습니다.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로마인들은 여러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도수로(導水路)를 건설했습니다.

 

웅덩이나 우물보다 좋은 것은 저절로 솟아오르는 샘이었습니다. 시내, 비, 이슬, 강, 샘 등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 없이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물은 ‘하느님의 은총’을 상징합니다(창세 21,19; 27,28; 신명 8,7; 11,14; 시편 133,3; 이사 35,6; 44,3; 예레 5,24; 에제 47,1-12; 호세 14,6; 요엘 2,23; 4,18; 즈카 8,12; 14,8; 야고 5,7; 묵시 22,1-5 참조).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지방 시카르의 우물은 고을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깊이가 42m에 이를 정도로 무척 깊어서 고을 사람들은 각자 두레박을 가지고 와서 물을 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당신을 영원한 생명의 샘으로 소개하셨습니다(요한 4,5-26 참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신 이유가 신학적으로는 그 여인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해석되지만, 실제 상황을 유추해 본다면 두레박이 없는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물을 청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 군사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요한 19,34 참조). 그리스도인은 이 물과 피로, 곧 세례성사로 새 생명을 얻고 성체성사로 양육됩니다. 예수 성심 성월, 사랑 때문에 상처 입으신 예수 성심과 더욱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하신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예수 성심 대축일 감사송 중).

 

[성서와 함께, 2014년 6월호(통권 459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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