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게 궁금해요] 창세 1장과 진화론 * 창세 1장을 공부할 때 친구가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진화도 하느님의 창조 방식’이라고 배운 대로 답변했지만, 스스로 마뜩하지 않았습니다. 진화론에 마음을 뺏긴 채 창세 1장을 다시 읽어 보니 혼란스러웠습니다. 여러 곳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거론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20대 카타리나 님) 와우, 시작부터 무거운 질문을 받았네요. 이 질문은 크게 보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꽤 오래된 내용입니다. 16-17세기 계몽주의와 함께 근대가 시작된 뒤 과학은 매우 놀랍게 발전했지요.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데 이어 우주의 발생과 생명의 변화에 대한 과학의 설명은 매우 풍부해지고 설득력도 높아졌습니다. 대폭발(Big Bang) 이론에 근거한 현대 우주론이나 진화론이 대표적 예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에서? 지난해 6월에 이른바 ‘교과서 진화론 개정추진회’라는 단체에서 진화론의 대표적 근거로 꼽히는 ‘시조새’와 ‘말의 진화’ 대목을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청원한 일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단체의 근간을 이루는 조직이 이른바 ‘창조론’을 주장하는 창조과학회입니다. 그들은 왜 진화론을 공격할까요? 다윈(1809-1882년)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처음 제기했습니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공동의 조상에서 생겨나 오랜 시간을 거쳐 변형되었으며, 그 변형의 핵심 요인을 ‘자연 선택’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자기 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는 자연 선택에 의해 후손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생명체는 소멸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종의 변화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는 때로 다른 종이나 새로운 종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화론을 접한 그리스도인은 우연성과 자연 선택을 강조한 내용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섭리를 무시한 듯 느꼈고, 특히 사람이 유인원 같은 더 낮은 종류의 생명에서 진화했다고 이해할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 여느 과학 이론처럼 진화론도 많은 비판을 받고 발전하였지만, 여전히 빈틈이 꽤 있고 학자들 사이에도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다양성과 변천 과정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에 신념의 토대를 둔 무신론자와 유물론자는 성경을 신화라 비웃습니다. 반면 성경의 문자적 진리를 옹호하는 이른바 창조론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진화론의 빈틈을 맹렬히 공격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 둘을 구분합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 인정하고(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경은 과학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고 밝힙니다(교황 레오 13세 회칙 <하느님의 섭리> 참조). 고생물학자 샤르댕 신부는 진화 사실을 적극 수용하여 물질과 생명의 진화를 거쳐 정신과 의식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진화를 하느님 창조 방식의 하나로 수용하며, 그 진화의 궁극적 목표가 그리스도라고 밝힙니다. 핵심은 성경 해석 문제 그리스도교에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로, 신앙 공동체의 근본 규범입니다. 문제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을 쓴 “인간 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표현 능력과 방법을 사용하여 동시대와 그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성서의 본문을 기록”하였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가톨릭 주석은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 아래 “본문의 의미를 그 언어 · 문학 · 사회-문화 · 종교 · 역사의 맥락 안에서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학문 방법과 접근을 자유롭게 이용”합니다(1993년 교황청 성서위원회 문헌, <교회 안의 성서 해석>, Ⅲ장 가톨릭 해석의 특징).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단순히 성서에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낡은 옛 우주관을 실재로 받아”들이는, ‘쓰인 글자’ 그대로 계시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 해석이 “성서 계시의 역사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합니다(같은 문헌 Ⅰ장 바. 근본주의 해석). 창세 1장의 가르침은 성경에는 창조에 관한 내용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 내용은 글자 그대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창세 1장도 그중에 하나입니다만, 성경의 첫머리에 자리 잡고 있기에 가장 대표적인 성경의 창조 기사로 인정받습니다. 이 기사의 바탕은 세계가 하늘과 땅과 지하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대 근동의 우주관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창세 1장이 바빌론 유배 시대나 귀환 직후에 사제들에 의해 쓰였다고 봅니다. 당시 근동에서 최고의 힘과 문화를 자랑하던 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들은 바빌로니아 문화에 물들지 않고 그것에 상반된 놀라운 계시를 전합니다. 곧 여러 신의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홀로 우주를 창조하셨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던 해와 달과 별은 땅을 비추며 낮과 밤을 관장하는 기능을 맡은 빛물체이며,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임금 같은 권한을 가졌다는 것, 제7일은 달의 보름 축제일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복을 누리는 안식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창세 1장은 우주론이나 진화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경전으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 그분이 사랑으로 지으신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 그 세계를 지키고 돌봐야 할 인간의 책임 등 근본 가르침과 창조 신앙을 시처럼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한처음에 있었던 한낱 과거사로 그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새해, 창세기를 읽으며 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 창조의 오랜 여정, 그 길을 허락하고 동행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깊이와 품을 새삼 느끼고 한껏 맛보는 날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또 창조와 진화 문제를 다룬 좋은 책이 많이 출판되었으니 참고해 보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시편 148,5). * 이용결 님은 본지 편집부장이며 말씀의 봉사자로 하느님 말씀과 씨름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월호(통권 442호), 이용결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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