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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이게 궁금해요: 선조들은 정말 그렇게 오래 살았어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661 추천수0

[창세기, 이게 궁금해요] 선조들은 정말 그렇게 오래 살았어요?

 

 

* 저는 제 집안의 족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게다가 그 안에 실려 있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습니다. 5장을 보니, 므투셀라는 무려 969년이나 살았더라고요! 이런 내용에 대해, 또 족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20대 박 스텔라 님).

 

 

가정에서 아들과 딸의 처지가 크게 엇갈리는 부분 중의 하나가 족보일 듯 싶어요. 제 체험을 통해 보면 아들, 특히 맏이라면 친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조상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시제를 언제 지내는지 자주 듣고 보면서 숙지하게 합니다. 또 몇 권짜리 두툼한 족보도 펼쳐 보게 하고요. 하지만 딸에게는 그런 기회를 거의 주지 않지요.

 

 

족보, 그 정체는?

 

개인이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받게 된 때는 근대에 들어와서입니다. 성경 시대를 포함하여 오랫동안 개인은 그가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만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느 집단(민족, 부족, 씨족 등)에 속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히 임금이나 사제 등 특별한 신분 계층에게는 더욱 중요했습니다. 족보는 한 집안의 기원과 친족의 상호 관계를 밝혀 오늘까지 이어져 온 가계도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몇몇 집안과 씨족에서는 시조나 중요한 조상의 목록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공동체가 왕국으로 확대되면서, 이런 목록은 수집되어 이야기를 연결하고 등장인물의 신원을 밝히는 족보로 활용된 듯합니다. 오경을 구성할 때 사제 계통의 저자는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을 포괄하는 관점에서 족보를 생각했습니다. 창세기의 구조를 열 개의 족보(히브리어 톨레도트Toledot는 ‘족보, 계보, 이야기’를 뜻합니다. 창세 2,4; 5,1; 6,9; 10,1; 11,10.27; 25,12.19; 36,1; 37,2 참조)로 구성하여, 사실상 온 창조 세계를 확대된 하나의 친족처럼 나타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다른 모든 종족을 함께 살아야 할 친족으로 여겨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죠.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아브라함을 설정하고도 이전의 연결고리로 창세 5장과 11장의 족보를 마련하고, 곳곳에 족보를 마련한 까닭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 밖에 구약성경은 물론 (예: 역대기) 신약성경에서도(마태 1장; 루카 3장 참조) 족보는 의미 있는 역할을 맡습니다.

 

족보의 내용은 사실일까요? 요즘 학자들은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과 족보의 상당수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힙니다. 성경에 나오는 족보의 사실 여부를 가릴 길은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족보의 사실성이 아니라, 족보와 그것을 둘러싼 성경 이야기가 전해 주는 메시지입니다.

 

 

5장의 족보에 서술된 인간의 긴 수명은?

 

5장의 족보에서 생명이 태어나 죽고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출생과 번성의 강복(1,28)이 유효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수명은 하느님의 강복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즉 긴 수명은 창조 때부터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강복을, 차츰 짧아지는 수명은 점점 죄가 심각해지고 확산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수명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데(6,3), 마침내 최대 수명이 120년으로 정해집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비슷한 족보를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대홍수 이전에 수메르 임금들은 짧게는 10,800년에서 길게는 72,000년을 다스렸다고 나타납니다. 옛사람들은 고대에, 즉 기원과 원천에 가까울수록 생명력이 충만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 긴 수명을 통해 자기네 기원을 되도록 먼 과거로 소급하고, 긴 시간의 간격을 메우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수메르 임금의 통치 기간을 합치면 432,000년, 창세 5장에서 아담의 창조부터 셈의 출생까지는 1558년).

 

5장의 족보에서 특이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아담의 칠대손인 에녹은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습니다(5,23). 긴 수명을 하느님의 강복으로 본다면, 턱없이 짧은 그의 수명은 저주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삼백육십오 년은 완전한 삶 또는 충만한 생애를 의미합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꽉 차게 산 뒤에 사라졌는데(5,24), 이는 죽었다(요나 4,3 참조), 또는 하느님께 갔다(2열왕 2,1 참조)는 표현입니다. 후대 문헌에서는 에녹이 승천했다고 이해합니다(집회 44,16; 히브 11,5 참조). 그래서 그가 하느님 곁에서 천상의 온갖 지혜와 비밀을 깨치고 세상에 내려와 그것을 알려 준다는 식으로 소개하는 책이 등장합니다(에녹 1·2서).

 

또 창세 5장에는 유일하게 노아의 이름을 지은 연유가 소개됩니다.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니함)’”(5,29). 첫 죄악으로 인해 저주받은 땅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흘러온 역사, 계속 확산되어 온 죄악의 역사에 어떤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 조짐을 느낍니다. ‘과연 아담이 죽은 뒤 태어난 첫 후손인 노아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을 겪을 것인가?’

 

우리는 족보를 통해 우리에게 이르는 긴 역사의 여정을 반추하고, 우리를 넘어 계속될 먼 미래를 희망하게 됩니다. 인류의 멸망에 관한 갖가지 풍문이 돌지만, 우리는 창세기에서 희망의 선포를 듣습니다. “그분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하셨다”(5,2). 인류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그분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피조물이기에 그분 안에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딸도 족보에 올려 한 집안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대우하지만, 족보나 혈통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개인 중심으로 급격히 바뀌는 추세이니까요. 그러나 집안의 족보를 한번 펴 보십시오. 끊어질 수 있는 허다한 난관을 딛고 나에게까지 지속된 그 흐름에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또 신앙인에게는 신앙의 DNA를 건네 준 또 다른 가계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가 흐르는 그 족보는 인간의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요한 1,13)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으니, 969년을 살고 죽은 므투셀라가 결코 부럽지 않죠?

 

* 이용결 님은 본지 편집부장이며 말씀의 봉사자로 하느님 말씀과 씨름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6월호(통권 447호), 이용결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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