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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지혜서 - 삶을 빛나게 하는 지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642 추천수1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지혜서] 삶을 빛나게 하는 지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세상을 받쳐 주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삐 가말리엘은 체육, 문학,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 그리스 사상의 영향으로 진리, 정의, 평화를 중시했습니다. 대사제 시몬은 세상이 토라, 하느님에 대한 섬김, 자비를 행하는 것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탈무드는 세계가 진실, 법, 평화의 세 토대 위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서는 지혜, 생명, 정의가 세상을 받치는 세 기둥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나중에 쓰인 지혜서는 지혜문학 중에서 ‘지혜’라는 명칭을 지닌 유일한 책이자, 영혼의 불멸성을 말해 주는 중요한 책입니다. 지혜서는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이 책은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50년 사이에 헬레니즘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 교육을 받은 유다인이 솔로몬의 이름에 권위를 두고 썼다고 봅니다.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잘 분별하는 정신 능력과 슬기’입니다. 슬기는 ‘사리를 밝혀 잘 처리해 가는 능력’을 말하는데, 지혜나 슬기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정신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지혜는 그리스어로 ‘소피아(σοφια)’, 라틴어로는 ‘사피엔시애(Sapientiae)’입니다.

 

지혜서는 모두 19장이며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느님 계획 안의 인간의 길’(1,1-6,21 참조), ‘지혜 예찬’(6,22-11,1 참조), 이집트 탈출에 대한 회고적 찬가인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11,2-19,22 참조)입니다.

 

이 세 단락은 둘째 부분인 예찬(Encomium)에 의해 구분됩니다. 이는 ‘지혜의 본성’(7,22ㄴ-8,1 참조)을 중심으로 기술됩니다. ‘예찬’은 설득력 있는 웅변술로 그리스의 문학 유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문학 유형은 당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던 젊은이들에게 지혜의 덕과 가치, 지혜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사례를 나열하거나 구절을 병행하며 비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방법도 당시 유행하던 헬레니즘 문학 형식에서 도입한 것입니다(7,16; 8,7 참조). 뿐만 아니라 유다교 전통 문학 형식인 미드라쉬 유형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10,1-19,22 참조).

 

이렇듯 지혜서에서 유다교와 헬레니즘 두 전통의 세계관과 문학에 대한 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다교에 관심을 가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궁정의 구성원들에게 이 지혜서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려 했다’(E. 쳉어)는 설이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1,1 정의를 사랑하여라.

 

이는 지혜서 전체를 꿰뚫는 핵심 주제입니다. 저자는 가르침을 받으려는 염원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법을 지키는 것이며, 법을 따르는 것은 불멸을 보장받기에(6,18 참조) “정의는 죽지 않는다”(1,15)고 말합니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8,1)하기 때문에 “세상의 통치자들”(1,1)은 정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의’는 그리스어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체다크’와 같습니다. 체다크는 이집트의 마아트(Ma’at) 신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E. 쳉어).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태양신 레(Re)의 딸이며 지혜의 신 토트의 아내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마아트를 진리와 정의의 화신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올바르고 정의로운 세계 질서의 여신으로서 죽은 자의 심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정의(체다크)’의 개념은 ‘마아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곧 체다크는 주님께서 세우신 질서이며, 사회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드러납니다. 지혜는 정의의 내면이기에 지혜가 없으면 정의도 없습니다(S. 슈뢰어). 지혜서에 따르면 체다크는 하느님에게서 오기에 실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가르쳐 주는 덕목인 ‘노고에 따른 덕, 절제, 예지, 정의, 용기’를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 지혜보다 유익한 것”(8,7)은 없기 때문입니다.

 

 

7,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서에서 말하는 지혜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영원한 빛을 반사합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지혜의 특성을 스물한 가지 나열하는데, ‘21’은 7의 3배수로 완전수를 의미합니다(J. L. 크렌쇼).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7,22-23). 이 말씀 중에 지혜가 ‘자유롭다’는 말은 그리스어 ‘아콜루토스(ἀκωλύτωϛ)’로 방해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평온하다’는 말은 ‘아메림노스(ἀμέριμνοϛ)’로 근심이 없음을 뜻합니다.

 

지혜서에서 드러나는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로 인간과 매우 가깝습니다. 저자는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7,25)고 합니다. 이러한 지혜가 거룩한 영혼에게 들어가 하느님의 벗이 되고 예언자가 되게 합니다(7,27 참조). 그러기에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1,1)는다면 주님의 지혜로 하느님의 벗이 됩니다.

 

 

5,15 그러나 의인들은 영원히 산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상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들을 보살피신다.

 

지혜서의 주요 사상 중에 또 하나는 ‘영혼 불멸’입니다. ‘예찬’을 둘러싼 첫째 부분과 셋째 부분은 의인과 악인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는 의인들이 의롭게 살아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상선벌악의 결과는 죽은 뒤에나 드러나기에 살아 있을 때의 희망이나 보상을 내세로 미루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코헬렛에서 말한 ‘인생을 즐기라’(코헬 9,7 참조)는 삶의 방식은 악인들에게서나 보게 되는 것이므로 단호히 거부됩니다(2,6-9.21 참조). 죽음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의 전통 개념이 깨집니다. 이는 의인이 일찍 죽더라도 안식을 얻게 되며,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3,7-8 참조)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나아가 지혜서는 죽은 이들의 심판을 최초로 언급합니다(4,20-5,23 참조). 2,12-16에서 악인들은 의인들의 태도에 분노합니다. 이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당하기 전의 음모와 매우 유사합니다. 악인들은 불행한 사람들의 의로움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들을 괴롭히며, 자신들의 힘을 정의라 하고 약자들을 내리누르려 합니다(2,10-11 참조).

 

악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의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자신을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탓하기 때문입니다(2,12 참조). 또 자기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자기의 길을 부정한 것처럼 피하기(2,16 참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의인들을 수치스럽게 죽이기로 결정한 이유는 그들이 한 말 때문입니다(2,17-20 참조).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의인들을 버려두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영원히 산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상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들을 보살피신다”(5,15).

 

여기에서 ‘영원히’라는 그리스어 ‘아이오나(αἰῶνα)’는 매우 오래 지속되는 시간을 말합니다. ‘살다’라는 그리스어 ‘자오(ζάω)’는 죽음에 반대되는 육체적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시며, 하느님의 창조 활동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E. 쳉어).

 

논어에 ‘지자불혹(知者不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40년이나 살았으면 지식이 아닌 지혜를 쌓아 놓았으므로 세상의 유혹에 강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은 생애의 삶을 빛내기 위해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7,26)인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지혜를 청하는 기도와 선조들을 이끌어 준 지혜에 대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월호(통권 454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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