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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예언서 -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302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언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형형색색의 가을 나뭇잎처럼 색채가 다르고 분량과 내용이 모두 다양한 예언서를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언서를 읽다 보면 이중적인 면을 마주하곤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가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언서가 ‘종합예술’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오페라를 감상하듯

 

종합예술의 대표적 예로 오페라를 들 수 있습니다. 오페라를 감상할 때 무대 배경만 보거나 프리마돈나가 부르는 아리아만 치중하여 듣거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만 듣는다면,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다 느낄 수 없습니다. 오페라가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연주되는 음악과 아리아, 그리고 합창과 무대 배경까지 폭넓게 보고 들어야 오페라가 지니고 있는 진수(眞髓)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이해하는 방법도 오페라 감상과 유사합니다. 예언서가 역사적 배경과 분리되면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 근동의 상황뿐 아니라 주변 민족들과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 각 예언자들과 그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 그리고 편집 배경 등을 폭넓게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 예언’에서 ‘구원 예언’으로 주제가 갑자기 바뀌거나 작은 단락들을 순서 없이 모아 놓은 책처럼 보이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예언서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큰 원인은, 예언서가 한 작가의 단일 문학 작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전 설교 선집을 함께 정리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사 8,16-20이나 예레 36,4.18.32 외에는 예언서의 집필 또는 기록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고대에 문자를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체계적 기록 방법에 대해 마음을 기울일 정황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을 따르는 제자 무리가 기회가 되는 대로 신탁 내용을 짤막하게 기록하고, 수백 년이 지나 그것들을 모아 편집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히브리 성경은 오경, 예언서, 성문서로 분류되는데, 예언서가 구약성경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예언서를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먼저 연대(年代)로 분류하면 ‘전기 예언서’와 북이스라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정경 예언자들’을 포함한 ‘후기 예언서’로 구분합니다.

 

전기 예언자들의 활동은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지만(판관 4장; 1사무; 2사무; 1열왕 17-19장; 21장; 2열왕 2-9장; 13,14-21; 22,14-20 참조), 그들의 가르침이 문서로 남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정경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보존되어 어느 정도 문서로 남겨졌습니다. 통상 예언서라고 지칭할 때는 ‘정경 예언서’인 후기 예언서를 말합니다.

 

후기 예언서를 구분하면 그 분량에 따라 네 권의 대예언서(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와 열두 권의 소예언서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구분 외에도 바빌론 유배를 중심으로 유배 전(이사야서, 호세아서, 아모스서, 미카서, 예레미야서 등), 유배 기간(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제2이사야서 등), 유배 이후(제3이사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등)로 나누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는 일치했지만, 각자 받은 소명이 다르고 전하는 메시지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배 이전과 이후의 메시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배 이전에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과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주요 메시지였지만, 유배 기간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위로와 구원 선포가 주요 메시지였습니다.

 

 

예언자에 대한 호칭, ‘나비’와 ‘프로페테스’

 

다양한 사람이 독특한 방식으로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레미야나 극소수 예언자를 제외하고 예언자 개인에 대해서는 무심할 정도로 관심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언자’라는 용어를 정리함으로써 예언자의 활동과 역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발견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시는 말씀인 예언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자주 표기하는 말은 히브리어 ‘나비(nabi)’입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 단어는 아카드어 ‘나비움’에 기원을 둡니다. ‘나비움’은 아카드어 ‘나부’(부르다, 선언하다) 동사에 어원을 둔 명사형입니다.

 

그밖에 예언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다’, ‘주시하다’ 동사에서 유래한 ‘환시가’라는 뜻의 ‘호제(chozeh)’(2역대 19,2; 29,30; 35,15), ‘선견자’라는 의미로 ‘보다’ 동사에 어원을 둔 ‘로에(roeh)’(1역대 26,28; 2역대 16,7.10), ‘하느님의 사람’이란 의미의 ‘이쉬 하엘로힘(ish haElohim)’(1사무 2,27; 9,10; 1열왕 12,22; 17,18; 2열왕 1,9; 4,9) 등이 있습니다. 예언자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는 ‘프로페테스(prophetes)’입니다. 이는 ‘앞서서 말하다’는 의미인데, ‘하느님의 뜻을 미리 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언자의 무리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참예언자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가 공존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모두에게 히브리어 ‘나비’를 사용한 반면, 그리스어에서는 거짓 예언자를 참예언자와 구분하여 ‘페이도프로페테스’라고 했습니다. 참예언자라는 말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활동한다는 것을 전제한 칭호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하는 기본 양식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또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사자使者 정식’을 써서 예언자의 역할을 드러냈습니다.

 

예언자들이 메시지를 전할 때 평범한 설교 언어로 전했을 뿐 아니라 표징, 환시, 비유,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음을 그들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예언자를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예언자의 활동과 역할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자 다윗 왕실에는 나탄 같은 예언자가 활동했습니다. 그 후 왕정 시대에 예언자들의 활동이 점차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예언자’라는 호칭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호칭이 창세기(20,7 참조)와 탈출기(7,1; 15,20 참조), 신명기(34,10 참조)뿐 아니라 판관기(4,4: ‘여예언자’ 드보라)와 사무엘기(1사무 3,20: ‘예언자’ 사무엘)에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정경 예언자들의 출현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에는 예언자라는 이름이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라는 이름은 고대부터 회자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후대에 예언자를 ‘하느님을 대리하여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전하는 사람’으로 이해하여 이스라엘에서만 예언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겠지만, 예언은 이스라엘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기원전 18세기부터 근동 지역에 있어 왔습니다. 이는 근동 문헌을 통해 증명됩니다. 예를 들어 고대 시리아-팔레스티나 문헌(<아람의 비문들>), 메소포타미아 문헌(<마리 문헌>), 이집트 문헌 등을 통해 예언 활동이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주변국에 예언자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는 바알 예언자들(1열왕 18,20-40 참조)과 모압의 예언자 발라암의 이야기(민수 22장 참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언 활동이 이스라엘 밖에서 드러난다 해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과 근동 세계에 존재한 예언 행사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에리히 쳉어는, 성경 이외의 다른 고대 근동의 텍스트에서는 예언자들과 왕 또는 국가 간의 근본적 충돌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예언자들과 왕 또는 국가 간의 근본적 충돌, 강력한 심판 통고, 백성의 운명 등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등 고대 근동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텍스트에 설사 심판을 제기하는 예언이 등장하더라도 제의상의 문제 정도만 다룬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 활동은 국가의 안위나 임금의 권위를 보전하기보다 하느님 말씀만 따르며 하느님만 충실하게 섬기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종교적 위기, 사회 윤리적 타락 등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에 대해 백성은 물론 임금에게도 서슴없는 권고와 심판 예언으로 이스라엘이 전통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 황미숙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으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에서 소임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6월호(통권 459호), 황미숙 마리루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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