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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예레미야서 -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942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예레미야서]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명을 실현하는 것’은 창조의 목적에 맞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은 두려움과 함께 강한 갈망 또는 열정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외적 난관이 있더라도 부르심을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하느님께 받은 소명을 실현해 가는 대표적 인물이 아브라함과 모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인간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딛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 예언자는 양지에서 평탄하게 산 사람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음지에서 자신의 소명을 충실히 실현한 사람입니다. 앞서 만나 본 이사야 예언자에 버금갈 정도로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예레 1,1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는 레위 지파의 도시 벤야민 땅 아나톳에서 예레미야가 사제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11,21.23 참조). 그가 예언직의 소명을 받기 전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전해 주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므나쎄 임금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유다가 친親아시리아 정책을 펴며 온갖 종류의 이교 제의와 관습을 강요한 시기였습니다(기원전 696-642년).

 

예언서의 서두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유배될 때까지”(1,3)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요시야 임금 재위 초기(기원전 627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까지 예언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40년 이상 혹독하게 예언 활동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에서 크게 벗어난 므나쎄 임금이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두 해를 다스린 뒤 죽자, 아몬의 어린 아들 요시야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요시야 임금은 아시리아가 쇠락하는 시기에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회복하고자 이교의 제의 장소들을 파괴하는 등 중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무렵 아시리아 제국의 속국들은 계속 떨어져 나가고 조공 상납도 중지되었습니다. 마침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바빌론 제국에 포위당하는 와중에 이집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주변국들을 굴복시켜 지역의 지배권을 회복하고자 시도합니다. 이때 파라오 느코와 므기또에서 싸우던 유다 임금 요시야가 전사하고 여호야킴이 왕권을 계승합니다. 요시야 임금이 갑작스럽게 죽자 종교 개혁은 곧바로 중단되었습니다(기원전 609년). 이집트 역시 바빌론 제국에 패하여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지배권을 바빌론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유다를 포함한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주변국들은 바빌론의 속국이 된 후에도 국제 정세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이집트에 기대어 바빌론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시도로 바빌론 군대가 처음 예루살렘 성문에 다다랐습니다(기원전 597년). 유다의 여호야킨 임금이 재빠르게 바빌론 제국에 굴복하였기에 예루살렘 성이 공격당하지는 않았으나, 여호야킨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함께 바빌론에 유배되었습니다. 바빌론 군대는 떠나기 전에 요시야의 아들 치드키야를 유다의 새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복종하지 않는 속국을 엄하게 다루던 바빌론은 치드키야가 충성 맹세를 어기고 도주하자 그를 끝까지 추격해 보복했습니다.

 

치드키야의 불복종으로 예루살렘 성은 공격당하고 성전은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면면히 이어오던 다윗 왕조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고, 상당수의 백성이 유배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사라진 후 많은 백성은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레미야는 유다의 마지막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강제로 이집트에 끌려갔고 그 후에는 흔적을 알 수 없습니다(43,5-44,30 참조). 전승에 의하면 이집트에 가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총 52장으로 구성된 예레미야서의 첫 부분(1-25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에 관한 신탁이 주를 이룹니다. 두 번째 부분(26-45장)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관한 이야기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는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으며, 이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번째 부분(46-51장)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52장은 역사 부록부분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과정을 보도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을 담은 예레미야서에서 첫 번째로 주목을 끄는 것은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입니다.

 

 

1,6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1,4-19 참조)는 머리글(1,1-3 참조) 다음에 바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한 이사야와 달리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저하며 회피합니다.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하기에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역설하며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1,6 참조). 우리가 예레미야 예언자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인간적 모습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명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면서도 소명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주저합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사명을 수행할 힘이 그의 능력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1,7ㄴ 참조). 먼저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고 진술하여 예언직의 기원을 하느님께 두고, 그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참된 예언자임을 밝힙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부터 예레미야를 당신의 사람으로 부르셨을까요?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1,5). 하느님께서는 네 가지 동사(빚다, 알다, 성별하다, 세우다)를 나열하시며 예레미야가 기억하기 전부터 그를 불렀다고 하십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당신 앞에 설 때까지 오랫동안 정성껏 돌보셨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에 앞서 하느님의 돌봄이 있었기에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3,14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이어지는 2장의 시작 부분은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이는 마치 호세아 예언서와 유사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에서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따르고 응답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상의 목적은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타락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합니다.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계약을 어긴 잘못’과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궁극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7장에 진술되는 ‘성전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지만, 산헤립이 성전 침공을 포기하고 물러가자 백성 사이에 ‘성전 불가침’에 대한 미신이 강한 환상으로 남았습니다. 더욱이 요시야 임금의 개혁 이후 지방의 성소와 산당들을 제거하고 모든 종교 의식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거행하도록 하는 ‘예배의 중앙 집중화’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설교를 통해 성전 불가침설은 거짓이며, 행실을 고치지 않고 ‘이는 주님의 성전이다’라고 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강조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무너질 수 없다’는 거짓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실로’를 예로 듭니다(7,14 참조). 에프라임 산지에 위치한 실로는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 성막이 세워졌고, 사무엘기에 나오는 사제 엘리 시대에는 종교의 중심지로서 매년 중대한 절기마다 순례지가 되었습니다(1사무 1,3 참조). 필리스티아인들에게 계약 궤를 빼앗기고 사제 엘리가 죽은 후, 실로는 종교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몇 해 전 지리학 수업의 한 과정으로 실로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괴로워하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울면서 예배드리러 올라가던(1사무 1장 참조) 실로를 떠올리며 낭만적 풍경을 그려 보았는데, 막상 당도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황폐하여 그곳이 한때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예레미야는 과거의 예배 중심지로서 영화를 누리던 실로가 폐허가 된 것을 언급하면서 예루살렘 성전도 난공불락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성전이 파멸의 운명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영원하리라는 환상에 젖어 회개를 미루지 말고 서둘러 주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 황미숙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으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에서 소임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0월호(통권 463호), 황미숙 마리루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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