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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에제키엘서 - 유배 시기 이스라엘의 파수꾼 에제키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697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에제키엘서] 유배 시기 이스라엘의 파수꾼 에제키엘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선택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내린 선택과 결단으로 하루의 경험이 빚어집니다. 좋은 경험이 있고, 마음이 씁쓸해지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숙할 수도, 조금씩 외골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각자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차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한 민족 전체의 역사적 경험에도 해당합니다.

 

한 민족이 경험한 불행한 역사가 그 민족을 반드시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97년에 바빌론 군대에 의해 포위됩니다. 당시에 나라를 다스린 지 석 달밖에 안 된 여호야킨 임금은 항복을 결정합니다. 그러자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성전과 왕궁에 보관된 온갖 보물을 수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호야킨 임금과 그의 모후와 왕비들, 고관대작과 기술자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것이 ‘1차 바빌론 유배’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유배되어야 하는 여호야킨 대신 그의 삼촌 치드키야를 임금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유다 왕국은 결국 패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곧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2차 바빌론 유배’입니다. 이때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여러 책은 이 시기의 경험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해석을 담았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서 역시 그러한 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한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 특히 유배된 백성에게 그들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지 말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여러 현인의 노력은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가장 결실이 풍성한 시절로 변화시켰습니다. 구약성경 대부분이 형성된 때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제 에제키엘 예언자가 고통스러운 체험 가운데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참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에제키엘 예언자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하고, 그가 예언자로 부름 받게 된 성소 체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메시지는 다음 달에 다루겠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누구인가?

 

사제 가문 출신인 에제키엘 예언자는 기원전 597년, 그가 25세였을 때 여호야킨 임금과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유배민과 함께 바빌로니아의 니푸르 지역 근처에 있는 크바르 강 가의 텔-아비브 유다인 거주지에 정착했습니다. 유배된 지 5년째인 593년, 에제키엘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에제키엘의 예언 활동은 기원전 593년에서 571년까지 약 2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와 동시대인으로 예레미야 예언자의 메시지를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독신으로 산 예레미야와 달리 혼인하였지만 그의 아내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에 사망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서에 따르면 유배된 이들 가운데 원로 몇 명이 자문을 구하러 그를 찾아오곤 했는데, 이는 그가 유배민 가운데 영향력 있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동료 유배민이 에제키엘의 메시지를 언제나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몇 년간 실어증에 걸리거나 마비 증상을 보이는 등 비범한 예언적 표징을 보인 것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배지에서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동료 유배민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선포한 에제키엘은, 사제요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의 두 가지 중요한 전통을 자신의 인격에 통합한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 가차없는 심판을 예고하는 동시에 구원을 선포했고, 환시가면서도 냉철한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에제키엘 예언자의 독특한 성소 체험은 그와 동시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성소 체험

 

에제키엘의 예언 성소는 유배 생활의 체험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유배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유배민이 겪는 신앙의 위기를 누구보다 깊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사제 가문의 한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의 일부인 사제직을 수행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의 질문은 곧 유배민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상 숭배로 물든 이방인의 부정한 땅에서 과연 하느님을 섬길 방법이 있을까? 유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왜 우리는 유배되어야 했을까?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신가? 우리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아직도 유효한가? 유효하다면 어떤 식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미래의 회복은 가능한가?’

 

그날도 에제키엘은 이런 질문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크바르강 가로 나갔습니다. 그가 강 가로 나간 이유는 부정한 땅에서 사는 몸이기에 강물로 몸을 씻고 기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 중에 놀라운 환시를 보게 됩니다. 그때는 유배된 지 5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북쪽에서 큰 바람소리와 함께 뭔가 불 같은 것이 날아오는데, 가만히 보니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네 생물이 떠받치고 있는, 바퀴 달린 하느님의 어좌였습니다. 이 어좌는 사방 어디든지 움직일 수 있고, 그 위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형상이 앉아 있었습니다. 에제키엘은 이 모습이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1,28)고 말합니다. 그는 이 영광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이는 자신이 본 환시를 하느님이라고 해석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에제키엘은 이 환시를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5년 전이었으므로 예루살렘에 계셔야 할 하느님의 영광이 바빌론이라는 부정한 땅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이방인의 땅에서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며,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바퀴 달린 어좌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하는 분이심을 알려 준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에제키엘은 어좌에 앉으신 분, 곧 하느님에게서 예언자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 소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불행의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라고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자들에게 보내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2,4.5.6).

 

그리하여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 건네주시는 두루마리를 받아먹습니다. 그는 그것이 꿀처럼 달았다고 말합니다(3,1-3 참조). 그때부터 에제키엘은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3,17)이 되어 앞으로 닥쳐올 하느님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유배민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과연 에제키엘은 유배민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며, 그들은 에제키엘의 메시지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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