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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소예언서 읽기: 정녕 그들은 야곱을 위로하고(집회 49,1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833 추천수0

[소예언서 읽기] 정녕 그들은 야곱을 위로하고(집회 49,10)

 

 

집회서 마지막 부분에 ‘조상들에 대한 칭송’이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조상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부분입니다. 성조들과 임금들과 예언자들을 기리는 가운데, 열두 소예언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열두 예언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뼈가 그 무덤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정녕 그들은 야곱을 위로하고 굳센 희망으로 그들을 구원하였다”(집회 49,10).

 

소예언자들, 숫자가 많다 보니 누가 누군지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짧은 예언서를 남긴 몇몇 예언자는, 구약의 역사에서 크게 중시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집회서의 저자 벤 시라는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그 파란만장한 여정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위로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 그 예언자들에게 “그들의 뼈가 그 무덤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위로, 희망, 구원

 

같은 절에서 벤 시라는 열두 소예언자가 전한 말씀들을 ‘위로, 희망, 구원’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선포 내용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소예언자들뿐 아니라 대예언자들의 경우도, 유배 전의 예언자들과 유배 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내용은 크게 차이 납니다. 구체적 내용은 개별 예언자들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몇 가지만 기억해 두기로 합시다.

 

1) 유배 전 예언자들은 대체로 심판을 선고하고, 유배 후 예언자들은 구원을 선포합니다.

 

외우셨나요? 그럼 한 마디씩 덧붙이겠습니다.

 

2) 유배 전 예언자들은 태평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다가는 멸망한다고 경고하고, 유배 후 예언자들은 이미 멸망한 이스라엘에게 장차 이루어질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기가 쉽지요? 자, 그럼 마지막입니다.

 

3) 유배 전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하리라 예고하고, 유배 후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자애 때문에 구원되리라고 선포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이유는 머리에 꼭 박아 두시라는 뜻입니다. 열두 소예언서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잊지 않아야 합니다.

 

 

멸망을 겪으며

 

그러면 심판을 선고한 유배 전 예언자들에 대해서까지 ‘위로, 희망, 구원’이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네, 짧게 말해 그것은 심판과 멸망이 구원 역사의 일부이기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절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멸망을 겪으면서 비로소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영원히 내치시는 분이 아님을, 그렇게 잘못하고 떠나갔어도 다시 불러들이시는 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참조)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큰아들은 늘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아버지의 것은 모두 그의 것이었습니다(루카 15,31 참조).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 아버지를 떠나간 작은아들은 집에 돌아오면서,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루카 15,20) 아버지가 자신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간 것, 재산을 탕진하고 객지에서 배고픔을 겪으며 곤궁을 겪은 것이 그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아닐까요?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멸망을 겪기 전의 이스라엘은 어쩌면 큰아들과 같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하느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충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잘못할 때에는 예언자들의 경고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멸망을 겪게 된 순간, 작은아들이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라고 말한 것과 같이, 이제는 자신의 죄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배 중과 유배 후의 예언자들은 기대하지 못한 구원을 선포합니다. 내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켜 나가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말해 줍니다. “정녕 그들은 야곱을 위로하고 굳센 희망으로 그들을 구원하였다”(집회 49,10).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을 겪게 되었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죽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시면서 그들에게 보호의 의미로 옷을 입혀 주신 하느님, 사람들이 살인자 카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시해 주신 하느님,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면서도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신 하느님께서,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19)라고 생각한 이스라엘을 다시 맞아 주신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는 멸망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음을 압니다. 멸망 다음에 구원이 온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폭풍 속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는 그 순간의 의미가 보이지 않겠지요. 예언자들을 생각할 때 저는 어떤 고통스러운 신비를 느낍니다. 멸망을 선포해야 하는 예언자들은, 여러 세대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될 하느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멸망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선포해야 했던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한편으로, 멸망한 다음 그 깜깜한 현실을 보면서 구원을 선포해야 했던 유배 후의 예언자들은 또 어땠을까요? 그들에게도 하느님의 계획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을 선포하면서도 그 구원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를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기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외쳐야 했던 예언자들은,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선포하고 있는 희망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예수님께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루카 7,19)라고 확인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우리는 이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위로이자 희망이고 구원이었음을 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과 함께 살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나간 시대의 예언자들은 기리면서도 자신과 같은 시대에 사는 예언자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가 심판을 선고하든 구원을 선포하든 그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는 이들이 우리처럼 멀리서 바라볼 수 없었기에,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었고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더 큰 맥락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예언자들의 말은 늘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예언자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언자의 몫은 어쩌면 역사에서 자기 위치를 스스로 확인하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깨달음과 논리를 가지고 다른 이들을 설복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지금 그들에게 선포하도록 맡겨진 하느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전하고 싶지 않은 말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은 그 말씀이 예언자 자신의 말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예언자들이 그 시대의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그들은 야곱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굳센 희망을 갖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 스스로 뛰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느님 말씀이 그들 안에 살아계셨기에 그들은 위로와 희망과 구원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순응하는 가운데 그들은 이스라엘과 자신이 겪는 어둠 속에서도 멀리 비치는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등을 썼고, 《약함의 힘》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월호(통권 454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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