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말씀 피정 (17) 나의 하느님은 도움이시다 이스라엘 민족이 르피딤 골짜기에서 목이 말라 주님을 시험하던 때(17,1 참조)에 아말렉족이 몰려와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입니다. 17장과 18장은 르피딤에서 벌어진 이야기인데, 이번 호에서는 아말렉족과 싸운 이야기와 모세를 찾아온 이트로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말렉족과의 전투 아말렉족은 에돔이라 불리는 에사우의 손자이며, 엘리파즈가 팀나라는 소실에게서 낳은 아말렉(창세 36,12 참조)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나오다 마침 피곤해 지쳐 있을 때, 하느님이 두려운 줄도 모르고 이스라엘을 공격한 야비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말렉족을 하늘 아래 흔적조차 남기지 말고 없애 버리라고 명합니다(신명 25,19 참조). 17,14-16도 이 점을 이야기하는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 처음 전투를 치른 상대가 바로 아말렉족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위해 장정을 뽑아 아말렉족과 싸우러 나가라고 명합니다. 그런 뒤 자신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아론과 후르(미르얌의 남편)와 함께 언덕 꼭대기에 오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족이 우세했습니다. 아론과 후르는 모세의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받쳐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둡니다. 모세는 하느님을 대신해 언덕 꼭대기에 서서 백성을 축복하는 모습을,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전투가 끝난 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일을 책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아말렉족에 대한 기억을 하늘 아래에서 완전히 없애 버리셨음을 여호수아에게 똑똑히 일러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제단을 쌓고 ‘야훼 니씨(주님은 나의 깃발)’라고 이름 붙인 뒤, 주님과 아말렉족 사이에서 전쟁이 대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르피딤 골짜기에서 벌어진 전쟁은 아말렉족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라, 아말렉족과 하느님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 길을 방해하던 아말렉족과 싸우셨다는 말입니다. 탈출기는 지금까지 하느님께 대적한 이들을 다양하게 언급해 왔습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께 대적한 이들은 이집트 임금 파라오와 그의 신하, 그리고 군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갈대 바다에서 그들을 모조리 치셨습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을 대적한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주님의 길을 방해하고, 뒤로 돌아서 이집트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도 참아 주시지만, 나중에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만드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 아말렉족이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대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당신의 일을 이루어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잔인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아말렉족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그들과 대대로 전쟁을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3,20-33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당신의 원수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이들은 모두 멸종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판관기와 사무엘 상·하권에 따르면 아말렉족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뒤 이스라엘 백성과 가장 많은 전쟁을 벌인 민족으로 기록됩니다. 그들은 사울과 다윗 임금에 의해 매번 유린당하는 민족으로 기록됩니다. 한 민족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리고, 그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섬뜩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느님이 참 두려운 분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하느님을 잔인한 하느님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해석한 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주 하느님만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우상 숭배를 끌어들이는 이방 민족은 하느님의 길을 방해하는 큰 위험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신과 관련된 이방 민족을 제거하고자 노력했고,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무섭게 그려진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는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자 한 이스라엘의 노력이 담긴 산물입니다. 바빌론 유배를 경험하면서 이방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그림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이방 민족을 통해 자신을 가르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방 민족을 창조하신 분도 하느님이라는 사실과 하느님의 복은 자신뿐 아니라 당신을 섬기는 이방인에게도 전해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을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분으로,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당신을 믿는 모든 이의 아버지로 알려 주십니다. 이방인이나 원수를 쫓아내거나 죽이려 들지 말고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폭력적인 분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약의 백성처럼 이방 민족을 죽이는 인종 청소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구약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처럼 자신이나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맙니다. 장인 이트로 미디안의 사제로 모세의 장인인 이트로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듣고 나서 모세의 아내 치포라와 치포라의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옵니다. 두 아이의 이름은 게르솜과 엘리에제르였습니다. 4,18-26에 따르면 모세는 이트로에게서 떠나면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트로가 그들을 데리고 모세에게 옵니다. 서로 다른 두 전승 자료에서 나왔거나 이집트 탈출이 너무 위험한 사건이기에 모세가 가족을 먼저 이트로에게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게르솜이란 이름은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40년간 이방인으로 살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낯선 땅에서 내가 이방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에제르는 이집트 손에서 이스라엘이 탈출하게 되었음을 기억하는 의미로 ‘나의 하느님은 도움이시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트로는 모세를 찾아와 주님이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칩니다. 그런 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 식사에서 이트로는 이스라엘을 위해 온갖 고마운 일을 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진심으로 기쁨을 나눕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빠진 순간을 틈타 이스라엘의 뒤통수를 치려던 이방인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바치고 진심으로 구원의 기쁨을 나눈 이방인 이트로도 있습니다. 이트로가 속한 미디안족은 카인의 후손이었기에(판관 4,11 참조) 결국 이스라엘 백성과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러나 이트로는 이집트 탈출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제사를 봉헌합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이 잘 조직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인이라고 무조건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일을 해 나가는 이방인이라면 누구라도 스승으로 모셔 그의 조언을 기꺼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성경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납니다. 재판관들을 세우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문의할 일이 생기면 모세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종일 백성을 위해 재판하고, 하느님의 규정과 지시를 알려 줍니다. 이런 모세를 보면서 이트로는 일하는 방식이 좋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다가는 모세뿐만 아니라 백성까지 지쳐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트로는 사제였기에 경험과 경륜이 많았고, 그것을 토대로 모세에게 대리자의 역할 곧 예언자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권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백성을 대리해서 백성의 일을 하느님께 고하고, 백성 앞에서는 하느님을 대신해 하느님의 규정과 지시를 밝혀 주며,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역할만 하라고 알려 줍니다. 그 외의 일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진실하며 부정한 소득을 싫어하는 유능한 이들을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뽑아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하라고 권합니다. 작은 일은 그들 선에서 해결하고, 큰 일만 모세가 관리하라고 권합니다. 모세는 이트로의 권고에 따라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이트로를 떠나보냅니다. 19장부터 모세는 오로지 하느님과 백성을 중재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탈출기는 중재자로서 모세의 모습을 부각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트로 이야기는 시나이 산의 계약 이야기로 넘어가는 하나의 징검다리입니다. 이제 다음 호부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입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5월호(통권 470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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