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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23: 우리 가운데 머물고자 하시는 하느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175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23) 우리 가운데 머물고자 하시는 하느님

 

 

이제 탈출기 피정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성소를 통하여 백성 가운데 머물고자 하시는 하느님(24,12-40,38)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계신 산으로 모세를 불러, 그에게 성소 건립과 사제직에 관한 지침을 내려 주십니다(24,12-31,18). 광야에서 백성 사이에 마련하시려는 당신의 거처와 당신을 위해 봉직할 사제에 관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함께 묵상해 보려 합니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

 

주님께서는 계약을 체결한 뒤 모세에게 산으로 올라와 머물라고 지시하십니다. 하느님의 명에 따라 모세는 시종 여호수아만 데리고 하느님의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백성에게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계약을 맺었던 산기슭(24,4 참조)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과 주님의 영광이 온 산을 뒤덮었습니다. 그 영광이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24,17 참조)고 전합니다. 구름이 덮여 있고 불이 치솟는 이미지는 화산을 연상케 하기에, 어떤 학자들은 시나이 산이 화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실제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찌 되었건, 모세는 산에 올라가 엿새를 기다립니다. 이렛날이 되자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사십 일을 하느님과 함께 지냅니다. 그러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 건립과 사제직 및 제사, 안식일 등에 관한 규정을 내려 주십니다. 그분은 그것을 돌 판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건네는데(24,12; 31,18 참조), 이 모든 장면이 마치 하나의 예식같이 느껴집니다.

 

 

산 아래 백성의 지도자들

 

모세는 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아론과 후르에게 상의하라고 백성에게 일러 줍니다. 아론은 모세가 일러 준 방식에 따라 백성을 이끌도록 선택된 인물로 소개되고(4,14-17 참조), 성소가 지어진 뒤에는 그곳에서 하느님 제단에 봉사하는 사제가 된(28,1 참조) 인물입니다. 후르는 여호수아가 아말렉 족속과 싸울 때 아론과 함께 산 위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주었던 인물입니다(17,12 참조). 그는 유다 지파 출신으로 칼렙의 아들이었는데, 칼렙은 가나안을 정찰했던 열두 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함께 유일하게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가나안을 치러 올라가자고 외친 이였습니다(민수 13,1-33 참조).

 

광야 생활을 했던 장정 가운데 오직 여호수아와 칼렙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후르에게는 브찰엘이라는 손자도 있었습니다. 탈출기 원문은 브찰엘의 이름을 다섯 번이나 언급하는데, 성소 건립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31,2; 35,30; 36,1; 37,1; 38,22 참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모세에 이어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던 여호수아는 에프라임 지파였고, 아론을 도왔던 후르는 유다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지파는 솔로몬 사후 나라가 갈라졌을 때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남북 분열의 주역이었으며 북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된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지파 사람이었으며, 북이스라엘의 수도 스켐 또한 에프라임 지역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이었던 르하브암은 유다 지파 임금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남과 북이라는 묘한 대조가 여호수아와 후르 사이에도 놓여 있는 듯합니다.

 

여기에서 사제직을 대표하는 아론 옆에 후르가 함께 있는 것 또한 무척 흥미롭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임금은 솔로몬이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모세가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면서, 아론과 후르에게 산 아래 문제를 맡기는 모습이 마치 땅에서 임금이 사제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듯한 형국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분열 왕국 시대의 역사를 투영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남쪽 유다 임금들이 칼렙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는 후르가 아니라 람의 후손들이라는 점,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여호수아로 대표된다면,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가까운 이들로 그려진다는 점이 다소 이상합니다. 오경은 북이스라엘이 아닌 남 유다 땅에서 최종 편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론의 황금 송아지 이야기와 북이스라엘의 예로보암이 단과 베텔에 세운 황금 송아지상 사건이 묘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성경 이야기에 저술되던 시기의 시대적 배경이 어느 정도 투영된 듯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어떤 이야기가 어떤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거처인 성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로 쓰일 성막과 그 안에 들어갈 각종 기물 만드는 방법을 직접 지시해 주십니다.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 한가운데로 들어가 머무실 거처(25,8-9 참조)가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소는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성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성막 제일 안에 위치한 지성소의 계약의 궤에 좌정하시고, 그 궤를 발판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고 생각했습니다(25,22; 민수 7,89; 1사무 4,4; 2사무 6,2 참조).

 

성소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이 이루어졌던 시나이 산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머물면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실 때에도, 백성이 머물던 장소와 원로들이 올라가 머물던 곳, 그리고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던 곳이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백성이 희생 제사를 드리는 성막 앞의 뜰, 사제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막 내부의 성소, 그리고 대사제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성소로 이루어진 성막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또 이 지성소에 위치한 계약의 궤 안에 십계명 돌 판도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는 마치 모세가 하느님과 함께 머물면서 십계명 돌 판을 받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소에서는 분향이 끊이질 않았고(30,1-10 참조) 등도 늘 켜져 있었는데(27,20-21 참조), 이는 하느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 위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불과 구름 기둥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시는데,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을 명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성소의 등과 분향입니다. 이처럼 시나이 산과 성소, 불과 구름 기둥은 모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안에 거처하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이 표지는 솔로몬 시대에 시온 산(성전 산) 위에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 지어진 뒤, 성전으로 완전히 대치됩니다.

 

 

사제 직분

 

성소가 건립되어 하느님께서 그곳에 머무시게 되자, 하느님을 위해 봉사할 사제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들을 영광스럽고 장엄한 모습으로 만든 뒤, 슬기의 영으로 가득 채워 주시어 재능을 갖추게 하셨습니다(28,1-3).

 

하느님은 사제들이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정해 주시는데, 그 규정은 매우 까다로워 보입니다. 특히 사제들 가운데 대사제의 역할을 수행할 아론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열두 개의 보석이 달린 에폿을 걸쳐야 했습니다. 또한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들이 달려 있는 가슴받이를 걸쳐야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주님 앞에서 그들의 이름이 기념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슴에는 판결 가슴받이를 만들어 달았는데, 거기에는 우림과 툼밈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림과 툼밈은 하느님의 뜻을 묻기 위한 것으로, 아론은 항상 그것을 가슴에 지니고 다니면서 백성에게 판결을 내려 주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하느님을 위하여, 또 백성을 위하여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게 된 아론도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흠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했습니다. 아론의 이런 비참함은 겉옷에 달린 방울이 잘 보여 줍니다. 아론 역시 하느님께서 계신 성소에 들어가거나 물러설 때에는 방울 소리를 울려야 했습니다. 울리지 않으면 비참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서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28,35 참조). 하지만 아론은 분명 “주님께 성별된 이”(28,36)였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예물을 봉헌할 때 ‘주님께 성별된 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순금 패를 이마에 달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봉헌물을 받칠 때 피를 쏟으면서 생기게 되는 부정을 아론이 대신 짊어짐으로써 모두의 부정을 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28,38 참조). 이런 점에서 아론은 하느님을 위한 사제이기도 했지만,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제이기도 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외에도 하느님이 정해 주시는 복장을 갖추고 제단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성소가 더럽혀지게 되어, 하느님께서 더는 그곳에 머물지 않으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제라 하더라도 성소를 더럽히는 죄를 지으면 죽음이라는 처벌을 면치 못하였는데(28,43 참조), 이것이 바로 아론과 그의 후대 자손들이 영원히 지켜야 할 규칙이었습니다. 이러한 규정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하느님께서는 사제로 임직되는 예식과 관련된 규정, 제단 축성, 제단에서 바쳐야 할 일일 번제물과 분향 제단과 제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을 꼼꼼하게 알려 주십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 외에도 많은 규정이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모든 명령을 내리신 뒤, 돌로 된 두 증언판에 그 말씀들을 당신 손가락으로 손수 기록해 모세에게 주십니다. 이러는 가운데 산 아래에서 큰 소동이 벌어집니다. 모세가 산에서 40일간이나 내려오지 않자, 백성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32,1).

 

다음 호에서는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머물고자 하시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이스라엘 민족의 뻣뻣한 태도와 아론의 황금 송아지에 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1월호(통권 476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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