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준비 - 주님을 향해 깨어 있으십시오! “그때에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2.13).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는 지난 2014년 대전에서 열렸던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Asian Youth Day)의 주제였습니다. “일어나라!(Wake Up!)”,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론 때 청년들에게 외쳤던 이 말은 “깨어나라!”를 뜻하기도 합니다. 강론 마지막 무렵에 “준비되었나요?(Are you ready?)” 하며 해맑은 웃음으로 화답하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어도 ‘준비’입니다. 이번 호에서 다룰 비유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시작 질문은 이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준비할 때 체계적으로 준비합니까? 아니면 대충 준비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쪽이 마음에 듭니까?”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를 마무리할 때가 왔습니다. ‘야고보서’(2014년 연재)처럼 케빈 페로타가 저술한 성경 6주간 시리즈 교재들이 성경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었다면, ‘비유’ 편은 예수님의 여섯 가지 비유만 따로 모아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껏 다룬 주제들을 되짚어 봅시다. 1. ‘들을 준비(1)’(마르 4,1-20)를 묵상하기 위해 ‘텃밭의 주인은 누구이신가?’(2월호)와 ‘텃밭지기 제자들은 누구인가?’(3월호)라는 주제를 통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다뤘습니다. 이어서 2. ‘자비로우신 하느님’(마태 20,1-16; 루카 15,1-10)을 묵상하기 위해 ‘길 잃은 사람들’(4월호)과 ‘직업’(5월호)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횡단보도에서 다른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건넜던 신학생의 나눔이 떠오릅니다. 그다음으로 묵상하기 위한 제목은 3.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5-10; 18,1-14)였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6월호)와 ‘남의 죄와 나의 죄’(7월호)에는 기도의 주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4. ‘이들 중에 누가 구원받은 자입니까?’를 묵상하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루카 10,25-37)를 바탕으로 한 ‘착한 이웃’(8월호)과,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이야기(마태 21,28-31)에서 뽑아낸 ‘약속’(9월호)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이어 5. ‘하느님의 초대’(마태 25,14-30; 루카 14,15-24)는 ‘복권 당첨’(10월호)과 참석하기 싫은 ‘회식 자리’(11월호)에 관한 일상의 주제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풀어 봤습니다. 되돌아보니, 이 글의 토대가 된 케빈 페로타의 성경 나눔은 하나같이 일상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 질문과 말씀의 연결 지점을 찾아가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도 예수님의 각 비유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살피고, 그 비유에 나타나는 ‘동일성’과 ‘상이성’을 고려하면서 말씀이 오늘 우리의 자리에 옮겨 오도록 노력했습니다. 유비적 상상력(또는 표상력)을 많이 연구했던 윌리엄 스폰은 《너희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예수와 윤리(Go and Do Likewise: Jesus and Ethics)》라는 저서에서, 성경 이야기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비적 사유는 다양성 속에서 동일한 패턴을 인식하여 다름 안에서 유사함을 찾는 것이다.” 핵심 원리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동’과 ‘인간 됨’이라는 본보기와 예증이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해야 하고, 새롭게 해석해야 하며, 실천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성경 묵상은 “다른 맥락에서 같은 패턴이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창조성을 필요로 합니다. 윤리신학자들의 이러한 논의 덕분에 성경과 도덕적 삶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길이 많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이달에 살필 성경 말씀도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한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된 질문과 성경 말씀의 연결 지점을 찾아봅시다. 인용한 말씀 중에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마태 25,3)는 구절을 다르게 표현하면 ‘준비하지 않았다’입니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체계적으로 준비합니까? 아니면 대충 준비합니까?’라는 일상적인 질문은 ‘믿음’의 준비에 관한 질문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여행을 떠날 때 새벽녘에야 옷을 대충 급하게 챙긴다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반면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에 등장하는 주인공 멜빈은 이틀간의 여행을 위해서 물건 수십 가지를 나열하고 하나하나 체크 리스트까지 작성합니다. 분위기를 띄울 때 쓸 음악과 부드러운 분위기 때 틀 음악, 그날 그날 입을 옷과 세면도구 등 모든 준비물을 침대 위에 나란히 배열해 놓은 장면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행을 준비합니까? 그런데 신앙 문제에서 하느님 나라의 여행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케빈 페로타는 열 처녀의 비유가 당대 신부들의 행렬과 축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가씨’ 또는 ‘처녀들’은 이 행렬에서 신랑과 동행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어떤 이유로 신랑이 늦어졌고 처녀들이 기다리는 동안 등불은 계속 탔습니다. 마침내 몇몇 등불이 차츰 꺼져 갔고, 절반은 등불 기름을 더 ‘준비’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신랑은 돌아왔고 혼인 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기름이 충분하지 못했던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러 간 사이 문은 굳게 잠겼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마지막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식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나타내는 보편적 상징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처녀들’이 뜻하는 바는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상징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손에 들린 등불의 불빛 아래서 다른 관심사들은 모든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 전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푹 잠들었다는 데 있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준비했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기름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그분이 오셨을 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일어나라!(Wake Up!)”와 “준비되었나요?(Are you ready?)”라고 한 교황의 말이 좀 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세상의 여행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을 만날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라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열 처녀의 비유는 그 준비를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위령의 날 미사에서 들었던 강론이 계속 마음 한 곁에 머뭅니다.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주님을 만나러 갈 때에는 세상의 어떤 물건도 소용없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은 오직 믿음뿐일 텐데, 우리는 자주 잃어버린 시간을 나중에 채울 수 있겠거니 하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권고하십니다. ‘준비는 되었니? 이제 일어나라!’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2월호(통권 477호), 최성욱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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