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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불같은 열정을 지니고 성경을 번역하다 - 예로니모의 대중 라틴 말 성경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840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불같은 열정을 지니고 성경을 번역하다


예로니모의 《대중 라틴 말 성경》

 

 

우리는 성인들을 묘사한 조각이나 그림에서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이는 베드로 사도이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사자를 배경으로 그려진 성인이 있다.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많이 늙었고 글쓰기 같은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그림 속의 인물은 바로 고대 최고의 성경 번역가인 예로니모(히에로니무스, Hieronymus, 374?-420년) 성인이다.

 

달마티아(Dalmatia)의 스트리도니아 출신으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예로니모는 수사학과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중병에 걸린 후 신이 내린 징벌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신기하게도 병이 진짜로 치유되었다. 놀라운 체험을 한 후 예로니모는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으며, 주일마다 카타콤바를 방문했다.

 

예로니모가 로마 제국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 트리어(Trier)의 정부 관리로 있을 때 그곳으로 귀양 온 아타나시오(Athanasius,  296/298?-373년, 주교)라는 스승을 만났다. 아타나시오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예로니모를 열심히 가르쳤고, 예로니모는 그리스어와 성경 공부에서 놀라운 진전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성경 공부를 해 보고 싶어진 예로니모는 동방 지역을 여행하다   콘스탄티노플에 들려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 중에 하나였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 (Gregorius Nazianzenus, 326/330?-390년)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어 373년에는 예루살렘을 순례한 뒤 안티오키아로 건너가서 성경 주석 방법과 그리스어를 더욱 철저히 배웠다.

 

그러던 도중에 수도생활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안티오키아 동편에 있는 카르치스 광야로 가서 4년 동안 기도와 고행, 공부에만 힘쓰며 은수 생활에 매진했다. 그런데 조용한 곳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자 오히려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했던 기억이 예로니모를 괴롭혔다. 과거에 보았던 무희들이 꿈에 나타나 춤을 추며 그를 유혹했던 것이다. 예로니모는 이런 욕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을 때면 옆에 둔 돌을 들어 자기 가슴을 치곤 했다. 그래도 유혹이 잘 없어지지 않자 예로니모는 히브리어 공부에 더욱 몰두하여 이를 몰아내려 애썼다. 언어적 재능이 뛰어난 그는 라삐에게서 짧은 시간에 히브리어를 배웠고, 머지않아 히브리어 성경을 암송하기에 이르렀다.

 

 

로마에서 활동한 교황 비서이자 번역가

 

은수자들끼리 서로 대립하며 분열하는 상황에 환멸을 느낀 예로니모는 379년 광야에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지역의 주교들은 학식이 뛰어난 예로니모를 존경하여 자주 자문을 구했다. 그의 명성이 로마에까지 이르자 다마소(Damasus) 1세 교황(366-384년 재임)은 그를 자기 비서로 채용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급하게 번역하느라 문체가 거칠고 오류가 많은 ‘고대 라틴어 역본(Vetus Latina) 성경’을 그에게 수정하라고 명을 내렸다. 예로니모는 짧은 시간 안에 구약성경의 상당 부분과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를 원어에 맞게 수정했다.

 

새로운 번역에서 워낙 뛰어난 능력을 보여 그의 명성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졌다. 예로니모가 교황의 신뢰를 받고 귀부인들의 영성 상담가로서 명성을 얻자, 시기하여 모함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384년 겨울 다마소 교황이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교황 후보 1순위였던 예로니모가 아닌 다른 이가 교황에 올랐다. 예로니모는 모든 명성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 정착했다. 그리고 ‘다마소 전 교황이 자신에게 명을 내린 라틴어 번역 성경의 개정 작업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불같은 열정으로 완성한 《대중 라틴 말 성경》

 

예로니모가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성경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꿈이었다. 그는 훌륭한 스승들에게 배워 그리스 철학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너는 내 제자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며 사제로 살아가고 있지만 너는 키케로의 추종자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네 보화가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로마인들이 모두 존경하던 유명한 인문학자였다. 예로니모는 꿈에서 깨어 주님께서 성경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 질책하신 것으로 느끼고, 이후 전 생애에 걸쳐 성경 번역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그는 386년부터 404년까지 18년 동안 자신을 그곳에 가두다시피하며 열심히 번역에 전념했다. 전해 오는 일화에 따르면, 예로니모가 열심히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데 바깥이 시끄러워 나가 보니, 사자가 동굴에 들어와 절뚝거리고 있었다. 워낙 대담했던 예로니모가 사자한테 다가가서 발을 살펴보았더니 큰 가시가 박혀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니모가 그 가시를 뽑아 주자, 신기하게도 사자는 그때부터 예로니모가 집필하는 내내 듬직하게 그의 곁을 지켰다고 한다.

 

베들레헴에서 예로니모는 성경을 개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리게네스가 편집한 《헥사플라》(6중역본)를 철저하게 분석한 후 히브리어에서 구약성경을 전부 다시 번역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가 완성한 책이 바로, 널리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책(통용본)이라는 뜻의 ‘불가타(versio vulgata)’ 즉 《대중 라틴 말 성경》 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 번역한 부분도 있지만, 한 명이 번역한 것 중에서 이 정도로 완벽한 번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성경은 5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아주 널리 보급되었으며,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는 불가타가 라틴어 성경으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고 공적으로 선언했다(1546년 4월 8일).

 

과연 예로니모가 사람들에게 심어 준 강력한 인상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에 담겨 있는 진리 이외에는 어떠한 인간적인 권력이나 기대감에도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결단과, 반대자들이 가하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용기를 지닌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동굴에 앉아 성경을 번역하던 그를 늙은 사자처럼 느끼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를 보며,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들려주는 진리와 가르침에 어떠한 마음으로 따르려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월호(통권 478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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