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일곱 나팔 (1) 봉인에 대한 환시의 마지막은 일곱째 봉인입니다. 일곱째 봉인은 일곱 나팔에 대한 환시와 직접 맞물려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뜯자 하늘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고 말합니다(8,1 참조). 침묵의 시간은 성경에서 새로운 일을 앞두고 준비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시간이 지난 후 일곱 나팔에 대한 환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일곱 나팔을 든 일곱 천사를 묘사한 내용은 대천사에 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토빗 12,15 참조). 또 나팔은 구약성경에서 큰 변화나 종말의 시기를 알리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종종 나타납니다. 처음 네 나팔에 대한 환시 봉인에 대한 환시와 마찬가지로 나팔에 대한 환시 역시 처음 네 나팔에 대한 내용을 묶어서 표현합니다. 첫째 나팔은 하늘에서 “피가 섞인 우박과 불”(8,7)이 땅에 떨어지는 환시입니다. 이 일로 땅과 나무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습니다. 이 환시는 이집트에 내린 일곱째 재앙(탈출 9,23-26 참조)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거리는 재앙의 확대입니다. 일곱 봉인에서 나타나는 재앙은 “땅의 사분의 일”(6,8)에 해당하였는데, 이제 그 영향이 삼분의 일로 커지기 때문입니다. 첫째 나팔로 인한 재앙에 나오는 ‘나무와 푸르른 풀’이라는 표현에서 이 재앙이 땅에서 나는 양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앞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양식이 부족하게 되리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나팔은 바다에 내리는 재앙입니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명체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집니다(8,8-9 참조). 이 재앙은 부분적으로 이집트에 내린 첫째 재앙, 곧 나일 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탈출 7,20-25 참조)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문맥상 바다에서 나는 소출과 연관됩니다. 셋째 나팔은 물과 관련됩니다.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과 샘의 삼분의 일을 덮칩니다(8,10-11 참조). 여기서 표현되는 “쓴흰쑥”은 구약성경에서 쓴 풀을 나타내거나 독초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합니다(잠언 5,4; 예레 9,14 참조). 이 재앙을 통해 해를 입는 것은 마실 물입니다. 땅에서 나는 양식과 바다의 수산물이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이제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실 물이 피해를 입습니다. 넷째 나팔은 어두움의 재앙입니다. 빛을 내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어 낮이나 밤이 더욱 어두워집니다(8,12 참조). 이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아홉째 재앙인 ‘어둠’(탈출 10,21-23)에 상응합니다. 첫 네 재앙은 모두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것입니다. 땅의 양식과 바다의 소출, 그리고 물과 빛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제 하느님의 재앙이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게다가 아직도 남은 불행을 일러 주는 독수리의 외침이 울려퍼집니다. 아직 재앙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두 나팔에 대한 환시 9장부터 다섯째 나팔의 환시가 소개됩니다. 다섯째 나팔로 인한 재앙은 메뚜기에 대한 환시입니다. 메뚜기는 이미 이집트에 내린 여덟째 재앙(탈출 10,12-20 참조)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앞에 나온 재앙들과 비교해 볼 때 다섯째 재앙은 인간을 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자연에 내린 재앙이지만, 이제부터 인간을 향한 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뚜기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하느님의 인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라”(9,4)는 것입니다. 이 재앙을 통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하느님의 재앙이 향하는 방향이 명확해집니다. 이미 선택받은 이들의 환시에서 보았던 것처럼, 요한 묵시록 저자는 재앙이 모든 사람을 향하지 않고 악의 세력에 동조한, 달리 말하면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그 점이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다섯째 재앙은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메뚜기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섯 달 동안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표현하는 다섯 달이 메뚜기가 실제로 살아가는 주기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메뚜기가 연초부터 여름까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메뚜기들은 지하의 사자인 아바똔, 곧 아폴리온을 임금으로 섬기고 있다고 표현됩니다. 저승 또는 지하 세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아바똔을 그리스어로는 아폴리온(‘부패’ 또는 ‘파괴하는 자’)이라 일컫습니다. 두 단어 모두 생명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집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힘이 지하 세계에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지하 세계의 세력들이 지상으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나팔은 더욱 강화된 환시입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메뚜기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네 천사에게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구체적인 요인은 “불과 연기와 유황”(9,18)인데,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섯째 나팔의 환시 마지막에 중요한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저희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9,20).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은 우상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저지른 살인과 마술과 불륜과 도둑질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9,21). 이 두 표현은 요한 묵시록에 나타나는 재앙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려줍니다. 하느님의 재앙은 믿지 않는 이들,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하느님께 맞서는 세력에 동조하는 이들을 향해 있고, 이 재앙의 목적은 그들의 회개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한 번에 심판하지 않고 여러 차례 재앙을 내리는 것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회개를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선택받은 이들의 편에서도 이 회개의 기회가 고통의 시간일 수 있지만, 하느님의 뜻은 잘못된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0월호(통권 475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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